태그 : Naval_Warfare_in_the_Imjin_War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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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이순신의 용병술과 관련된 간단한 잡상 이전에 썼던 것에 트랙백 추가이순신의 용병술에서 종종 『오자병법』에서 응용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만 인용되지만, 실제로 그가 자주 되새긴 말은 다름아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였다. 트랙백한 원 글에서 언급한 1594년 일기 뒷부분의 메모 ...

7년 전쟁 당시 조선수군 갑옷 착용 여부에 관해

이번에 임진왜란 1592가 방영되면서 다시 케케묵은 조선수군 갑옷 얘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난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얘기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뭐 갑옷을 입은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우선, 갑옷은 전투목적에 따라 디자인·착용되는 복장이다. 갑옷을 풀세트로 차려입은 모습이 멋은 나겠지만, 무게가 나가고 동작을 제한시킨다....

연재 번외편-이순신의 해전과 거북선에 관한 짧은 글

본격적인 전역을 살펴보기 전에, 이순신의 전술과 관련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거북선이다.정조 때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수록된 2가지 종류의 거북선 그림. 위는 통제영 거북선, 아래는 좌수영 거북선이다. 『이충무공전서』는 통제영 거북선이 이순신이 원래 설계했던 거북선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명장들의 진가는 종종 ...

7년전쟁 당시 조선수군의 함포운영과 관련해서

내가 계속해서 얘기하는 것이지만, 7년전쟁 당시 조선수군의 함포사격의 운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을 것이다. 일단 내가 이전에도 얘기했듯이[링크] 일단 화약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여기에 화포의 운용 자체가 상당히 조잡했다. 지금 7년전쟁 당시 전투를 그리는 것을 보면 화포를 동거에 싣고 사용하는데, 이 동거는 7년전쟁 당시에는...

이순신의 용병술과 관련된 간단한 잡상

임진전쟁 동안 이순신의 전적을 보면 그의 군사적 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이 체계적으로 병서를 남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전사해버렸기 때문에 그가 어떤 형태로 군사학을 응용했는지 생생한 육성으로 듣기는 힘들다.그래도 이순신이 남긴 일기나 장계를 읽어보면 어떤 형태였는지 어느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보통 이순신이 『오자병법』...

이번에 거북선 보도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 몇 가지

며칠 전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채연석 교수님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거북선 설계도를 복원했다는 기사가 나왔었다.[링크] 언론보도를 통해 복원도를 보고 생각한 몇 가지 의견을 정리해 봤다.(주의: 나는 공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인 부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는데다가, 논문을 직접 본 것이 아니고 언론 보도를 통...

7년 전쟁 해전의 재분석-(5) 조선 수군의 실제 전투 모습②

사격전에서 피해를 보면 일본군은 조선군의 사격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조선군은 이런 일본군을 붙들고 공격했다. 「2차 당포·당항포 등 4곳의 승첩을 아뢰는 계본[二度唐項浦等四處勝捷啓本]」에서 "허둥지둥 도망가려 하자 요구금要鉤金으로 바다 가운데로 끌어내었다[退遁設計次, 要鉤金以牽出中洋]"는 말은 조선군이 일본군의 배를 붙들고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내어 공...

7년 전쟁 해전의 재분석-(4) 조선 수군의 실제 전투 모습①

지난편에 조선군의 화기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얘기되었다고 했는데, 기록을 토대로 계산을 하면 실상이 어땠는지 드러난다. 1593년 1월 26일, 이순신은 유황 1백여근을 내려주길 청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임진장초』 원문은 국가기록유산 DB에서 제공하는 판독문을 기본으로 삼고 『이충무공전서』 수록본을 참고했다. 초고에는 이두체로 되어 있는 문장들이 『이...

세계 전쟁사에서 이순신이 가지는 의미

한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장인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지만, 정작 세계 전쟁사에서 그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민족사관의 영향으로 이순신이 "(한)민족의 영웅"으로 부각되면서, 그가 세계 전쟁사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는지에 대한 논의는 완전히 매몰되어 버렸다. 백날 나오는 소리라고 해봐야 기...

『징비록』에 기록된 칠천량 해전의 참패

『징비록』에는 한산도해전 때 견내량에 정박한 일본군을 곧바로 공격하자는 원균의 건의에 이순신이 이렇게 답했다고 쓰여있다.公不知兵. 如此必敗.공은 병법兵法을 모르는군요. 그렇게 하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징비록』 권1)이순신이 비록 아랫사람이건 윗사람이건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이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말했을지는 의심이 간다. 장수에게 ‘병법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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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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