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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의 충주전투 기술의 문제점-『서정일기』와의 교차검증을 통해

역사는 기록을 통해 전해진다. 기록의 형태는 대개 '글'이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호소하는(persuasion) 목적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하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의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징비록』도 예외는 아니다. 『징비록』은 간결하면서도 생동감있는 서술로 임진왜...

유성룡의 칠천량 해전 재구성과 관련하여

오랜만에 쓰는 『징비록』 관련 연재글. 하지만 기대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게 함정유성룡의 『징비록』이 신뢰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패전한 정황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적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징비록』을 보면 탄금대 전투를 비롯해 조선군에게 망신스러운 전투였던 용인 전투나 칠천량 해전의 패전도 모두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이 있는 그대로 적힌다...

유성룡이 1597년 이순신에 대해 원래 기록했던 내용

이순신의 체포와 하옥에 관한 『징비록』의 편집 내가 예전에 썼던 글에서 트랙백예전에 1597년에 있었던 이순신의 체포와 관련해서 『징비록』이 간행되면서 초고로 쓰여졌을 때와는 달리 편집된 것을 포스팅했었는데, 『난후잡록亂後雜錄』을 읽어보니 정도가 훨씬 더했다. 유성룡은 『징비록』을 쓰기 전부터 여러가지 7년 전쟁과 관련된 기록을 남겼었는데, 이를 『징비...

유성룡의 개인적인 사안과 관련된 『징비록』의 편집

유성룡의 『징비록』은 간결하면서도 개괄적인 임진왜란사 정리로 널리 읽혀지지만,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선조수정실록』의 유성룡 졸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평이 있다.嘗追記壬辰事, 名曰『懲毖錄』, 行于世. 識者以其伐己而掩人譏之.일찍이 임진년의 일을 추기追記하여 이름하기를 『징비록懲毖錄』이라 하였는데, 세상에 유행하였다. 그러나 식자識...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 대한 기록의 변화

유성룡이 『난후잡록亂後雜錄』→초본 『징비록懲毖錄』→간행본 『징비록』 순서로 7년 전쟁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텍스트가 변한 부분을 보면 주로 이순신李舜臣(1545~1598)과 관련된 부분이 많다. 이순신을 시기하던 선조를 묘사한 것이 누그러진 부분도 있지만, 이순신의 활약을 정확하게 기록하면서도 문학적 기교를 부리려고 한 모습이 나타난다. 핵심적인 부분을...

연재를 보강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징비록』을 간행본과 초고를 비교하면서 연재를 했었습니다. 마음먹고 연재를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10여편이 넘는 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써 왔던 글에 만족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보강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유성룡의 저작집은 『서애집西厓集』과 『징비록懲毖錄』*으로 대표되지만, 사실 그의 저술 모두가 정리되어 간행된...

『징비록』의 탄금대 전투 서술과 관련하여

유성룡은 『징비록』 뒷부분의 《녹후잡기錄後雜記》에서 이렇게 단언한다.昔鼂錯上言兵事曰 "用兵臨戰, 合刃之急有三. 一曰得地形,  二曰卒服習,  三曰器用利." 三者, 兵之大要,  而勝負之所決,  爲將者,  不可不知也.옛날에 조조鼂錯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가서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세 가...

수도를 버리고 공황에 빠진 선조

1592년 4월 30일, 선조는 수도를 버리고 파천길에 오른다. 사실, 군사적으로나 당시 정황을 봐서 선조가 무모하게 서울을 지키려고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36계 줄행랑도 엄연한 병법이다 하지만 개국 이래 처음으로 단행된 파천길은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다. 사실, 이런 상황의 책임은 선조에게 있었다. 파천행위가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만큼, 이에 ...

유성룡이 극적으로 묘사한 이순신의 최후

1598년 11월 19일 새벽, 노량해협에서 조명연합군과 일본군은 7년 전쟁의 마지막 격전을 벌였다.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진행된 전투는 조명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일본군은 전선 200여척이 불타고 100여척이 나포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현장을 돌아본 이덕형이 "왜적의 시체와 부서진 배의 나무 판자·무기 또는 의복 등이 바다를 뒤덮고 떠 있어...

강화회담 문제로 선조를 압박하는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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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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