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Old Breed』 번역본 문제점(1) by 연성재거사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병대 소속으로, 펠렐리우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던 유진 슬레지의 회고록 번역본이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링크] 개인적으로 단편적으로 번역한 부분을 올렸던 적도 있던 터이지만, 원서를 읽었던 입장이라 번역상태를 봤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이 출판사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질렀지?' 싶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습니다. 나름 광고도 열심히 뿌렸는데, 그 광고에 쓸 정성을 번역 검토에 들이지 그랬냐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사실 일일이 까기에는 저도 시간이 없고, 그걸 시시콜콜 다 따지면서 쓰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항목별로, 명확해 보이는 것만 짚겠습니다.

1. 한 사람이 작업한 것 같지도 않고, 검토도 정밀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미묘한 단어를 어떻게 번역했나 보면 나옵니다. 이 책에서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Old Breed입니다. 문구를 직역하면 고참병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저자가 소속되어 있던 미 해병1사단의 별칭이기도 합니다. 서론의 주석에도 언급이 있긴 합니다.(23쪽)
그런데 이 단어 번역부터 오락가락 거립니다. 책을 여는 머릿말로, 저자는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제5해병연대 제3대대 K중대 중대장이었던
앤드루 홀데인 대위를 기리며,
지옥을 함께했던 전우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In memory of Capt. Andrew A. Haldane,
beloved company commander of K/3/5,
and to the Old Breed

일단 "beloved 어디로 갔냐?"를 묻기 전에 Old Breed를 보시죠. 두 단어 모두 대문자로 첫글자를 썼습니다. 명백한 명사형이고, 때문에 여기서는 해병 1사단이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서론에서 멀쩡하게 써 놓고, 제일 중요한 머릿말에서 이렇게 멋대로 옮겨놓았습니다.
또 하나, 헤이니 중사를 이야기한 부분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역전의 고참병들>과 직접적인 연결점이 되어 주었다. 우리에게 그는 고참병이었다. 우리는 그를 존경했다. 그리고 사랑했다.(98쪽)

He provided us with a direct link to the “Old Corps.” To us he was the old breed. We admired him—and we loved him.(p.45)

여기서 Old Corps는 해병1사단 소속 5연대를 지칭하는 말합니다. (직역하면 "고참 부대" 정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단어를, 앞에서는 <고참 해병대>(84쪽)라고 해 놓았습니다. 분명히 5연대를 지칭하는 동일한 용어인데, 전혀 다르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작업한 것이 아니며, 검토작업도 정밀하지 못했다는 의심이 과연 근거가 없는 것인지요?

2. 어설픈 의역

사실,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직역"만으로 모든 번역이 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어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의역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의역을 정말 이상하게 해 놓았습니다. 교양있는 한국어를 만들려는 시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원문의 어감과 현실감을 다 죽여놓았습니다.
가령, 펠렐리우에서 수륙양용차에 실린 보급품을 내리던 도중 포격이 날아오자 운전병이 불평합니다. 이 때 부사관이 이렇게 답합니다.

「미안해 친구, 그렇지만 이 암트랙에서 보급품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가 죽어난단 말이야!」(169쪽)

“I'm sorry, ole buddy, but if we don't get these supplies unloaded, it's our ass!”(p.95)

번역 자체는 크게 틀리질 않습니다만, 맨 마지막 문장에서 문장을 순화하면서 어감을 다 죽여놓았습니다. 좀 센스있게 옮기면 "우리가 ㅈ되거든!"이 될텐데 말이죠. 덕분에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아주 교양있게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Nips나 Japs, 영어에서 둘 다 일본인을 지칭하는 비속어입니다. 한국어로 치면 쪽발이/쪽바리 정도 되는 단어인데, 이게 줄줄이 "일본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상대로 정말 절제되게 말을 하고 있죠?

일단 1부는 여기까지. 앞으로 2부까지만 쓸겁니다. 차근차근 따지면 끝이 없거든요.(녹차)

막짤은 기분 전환용 하빵이 여신님으로 마무리 ㄳ

덧글

  • Linesys 2019/11/08 17:50 #

    케빵이도 이번에 솔로 내면서 염색했어요!
  • 연성재거사 2019/11/08 23:56 #

    ㅇㅇ 벌써 알고 있음둥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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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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