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8월 18일 역밸 세미나 예정 by 연성재거사

역사 이야기와 함께하며 즐겁게 이 여름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취지의 자리, 오프라인 역사 세미나가 죽지않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토요일(2018년 8월 18일), 역사를 좋아하시는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의 동호인 여러분을 모시고 다양한 주제로 발표, 토론하는 세미나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장소는 한양대학교 국제관 209호이며, 시간은 11시부터 오후 5시 까지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참가비는 묻는 사람 빼고 없으며, 중간 참가도 환영입니다. 그리고 오신 분들께는 다과가 제공됩니다.

발표자는 현재 7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주제와 내용을 발표 차례 순으로 소개드립니다.


1. PKKA : <1945년 '8월의 폭풍'과 1991년 '사막의 폭풍' : 유사성을 중심으로>

- 1991년에 걸프전쟁을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의 승리로 이끈 "사막의 폭풍" 작전은 성공적인 군사작전의 모델로 찬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작전이, 소련군이 1945년 8월에 시행한 만주작전과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면, 믿어지십니까?

만주작전과 사막의 폭풍 작전의 유사성을 사령부 구성, 작전개념, 기만작전, 작전수행 과정을 통해 분석하고, 그리고 두 작전을 연결시켜주는 '제다이 기사단'의 정체를 밝혀 두 작전의 연관성이라는 미싱링크를 분석합니다! 작전술의 포스가 함께하길!

2. 키케로 : <1908년 보스니아 위기의 원인과 영향>

- "뭐가 문제였지? 완벽한 협상이었는데?"

1878년 베를린회의 이후, 투르크의 영토였던 보스니아는 오스트리아의 통치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년뒤인 1908년, 오스트리아는 공식적으로 보스니아의 병합을 선언합니다. 그러자 이제와서 갑작스럽게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이에 분개를 표했고 결국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왜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를 합병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합병을 받아들일수 없었을까? 보스니아 위기의 원인과 전개, 결과를 분석합니다.

3. 연성재거사 : <사로병진 작전 : 꿈은 높은데 현실은...>

- 1598년 말에 벌어진 사로병진 작전은 육군과 수군을 포함한 10만이 넘는 병력을 3개 전선에서 동원한, 7년 전쟁을 통틀어 최대규모의 군사작전이었습니다. 흔히 이 작전은 히데요시의 사망과 함께 철수하는 일본군을 추격하기 위한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남해안에 주둔한 일본군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6개월간의 준비를 거친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심찬 의도와는 달리 사로병진 작전은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고 마는데....... 

4. Mr 스노우 : <군사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 : 영국군을 중심으로>

- 기존의 군사사 논의는 몇몇 명장들과 그들의 혁신적인 전술에 대해 집중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학계에서 군사사를 보는 시각은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화약 혁명-근대 전쟁의 탄생' 같은 도식이나 '혁신주의 vs 복고주의' 등의 이분법이 퇴조하고, 완벽한 '최강의 군대'를 설정하고 그 모습에서 벗어나는 다른 군대는 질타하는 방식의 서술은 지양되고 있습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와 함께, 이들 군사사 연구의 전반적인 변화와 동향을 살펴봅니다.

5. shaw : <타렌툼 전쟁 또는 마지막 삼니움 전쟁. 혹은, '피로스 전쟁' : 기원전 3세기 초 이탈리아사의 맥락에서>

- 모든 것이 어중간한 전쟁. 그런데 그 어중간함에 의미가 있다?

피로스 전쟁은 알렉산드로스-워너비의 모험 원정이라는 관점에서 정리, 서술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전쟁 과정도 주로 피로스의 재능이나, 남들이 피로스를 도왔는가 그렇지 않은가 등의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원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상황에서 시작되고, 이탈리아 공동체들이 대거 참전했으며 그들의 운명에 큰 영향을 준 사건입니다.  피로스를 당연히 따랐어야 하는 존재나 피로스의 적으로서가 아닌 전쟁 당사자로서의 이탈리아 공동체들의 입장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전쟁 과정의 여러 가지 문제를 검토합니다.

6. 전위대 : <반공에서 반장으로 : 국민당 서산 회의파에 대한 일고찰>

- 1925년, 손문이 사망하고 구심점을 잃은 국민당은 11월 '서산회의'를 계기로 기존의 광저우 당중앙과 국민당 우파 원로들이 새로 수립한 상하이 당중앙으로 분열됩니다. 후자가 바로 서산 회의파라고 불리는 집단입니다.
 
오늘날 서산 회의파의 존재는 그저 잊혀지거나 공산당을 싫어한 노친네들 정도로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산 회의파는 1927년까지 독자적으로 국민혁명을 수행하였고  국공내전 이전 최대의 내전인 반장전쟁을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과 실제 주장, 역사적 영향력을 볼 때, 그 존재를 간과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미증유의 분열과 재난 속에서 중국을 구하고자 했던 수많은 노선, 인물들이 명멸해간 시대. 서산 회의파를 통해 그 시대의 이해로 한 발짝 더 다가가 봅시다.


이 외에 함께 발표해 주실 셔먼님 주제는 곧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들께서는 간단히 비밀 댓글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는 인원 파악과 길 안내 등의 연락을 위해서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덧글

  • 2018/08/13 23:3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8/17 18:4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8/14 11: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8/14 14: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채여 2018/08/16 11:54 # 삭제

    구경이나 가야지
  • 바다루 2018/08/17 23:01 #

    저는 경산 쪽으로 가느라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성과 있는 세미나 되시길 바라며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8/08/17 23: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연성재거사 2018/08/18 01:18 #

    일단 조선수군이 결정적으로 전멸한 날은 16일 새벽입니다. 『해소실기』에 의하면 16일 5경 무렵 일본군이 야습을 했고, 이 증언이 『선조실록』에 인용된 김식의 보고와 거의 일치(15일 밤)합니다.
  • ㄴㄴ 2018/08/19 00:53 # 삭제

    재밌었네요..특히 Mr스노우님이 가장 인상깊었음.
    혹시 그분 ppt 끝날때쯤 새로운시각 반영된 책,논문 목록 슬라이드 있던거 찍으신분 있나요? 저자만 메모해놯는데, 사진을안찍어서...
  • 연성재거사 2018/08/20 12:20 #

    저도 사진을 따로 찍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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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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