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의 변 당시 명군 규모와 관련된 간단한 잡설 by 연성재거사

중국 역사를 보면 정말 이상한 황제들 많지만, 그중에서도 명나라의 황제들은 최악의 집합체로 유명하다. 16명의 황제들 중 그나마 일을 한 황제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나머지는 궁에서 향락에 빠져 살았다. 이 막장황제 열전에서 특히 이름있는 인물이 영종 정통제(1427~1464. r.1435~1449, 1457~1464)이다. 그가 이런 악명을 듣게 된 데에는 왕진에게 놀아나다 토목보에서 참패를 당하고 포로가 된 것이 한 몫 했다.

영종의 어진. 타이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토목의 변 때 영종이 끌고 간 명군의 규모는 대략 50만 가량이라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애당초 명군의 편제와 그 뒤의 전개를 감안하면 이 숫자는 나올 수가 없는 숫자이다. 편제상 북경에 주둔한 수비대가 20만, 난징 수비대가 12만이다. 그 뒤에 영종이 잡히고 나서 북경의 방어를 위해 난징의 수비대를 호출한 것을 감안하면 북경과 그 주변의 수비대를 동원해서 출정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50만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군세를 과장한 숫자이거나 서류상의 군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명사明史』 《본기本紀》 「영종전기英宗前紀」에는 전사한 군사의 숫자가 수십만數十萬이라고 했지만, 이것도 "편제상 계산한 숫자"(=서류상의 숫자)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명의 군제는 서류상으로 완벽하게 짜여서 돌아가고 있었지만, 장부상의 병력과 실제 병력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서 장부의 2~3%밖에 되지 않는 곳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반 이하인 20만 이하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차에, 앨런비님께서 『조선왕조실록』에서 실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만한 기록을 알려주셨다.

通事姜文寶還自遼東啓曰 "臣見鎭撫王璜問之, 答曰 ‘廣寧·遼東間站路, 皆爲達達所掠, 殺虜人畜數萬, 時未知達達去處. 指揮吳良會入達達地面被留, 密使人奏「秋初, 達達將犯中國.」 七月十七日, 皇帝領兵八萬親征, 出居庸關, 行至長安嶺, 都督楊弘三父子伏兵山間擊賊, 擒殺四萬餘級.’ 但傳聞此事, 而時未有文移可考. 遼東等處, 晏然無事."
통사 강문보姜文寶가 요동으로부터 돌아와 아뢰기를,
"신이 진무鎭撫 왕황王璜을 보고 물으오니, 대답하기를, ‘광녕廣寧과 요동遼東 사이의 참로站路가 모두 달달達達에게 노략당하여,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사로잡아 가기를 수 만에 이르렀는데, 그 당시 달달이 간 곳을 알지 못하여, 지휘指揮 오양회吳良會가 달달의 지면地面에 들어갔다가 잡혀서 억류되었는데, 비밀히 사람을 시켜 아뢰기를, 「초가을에 달달이 중국을 침범할 것입니다.」 하므로, 7월 17일에 황제가 군병 8만을 거느리고 친히 정벌하러 거용관居庸關을 출발하여 행차가 장안령長安嶺에 이를 적에, 도독 양홍楊弘의 삼부자三父子가 산속에 복병했다가 적을 습격하여 4만여 급을 죽이고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전해 들었을 뿐, 문서로 전달되어 상고할 만한 것은 없사오며, 요동 등 지방은 조용하여 아무 일도 없습니다."
하였다.
(『세종실록』 세종 31년(1449) 8월 18일)

여기서 7월 17일에 황제가 친정했다는 대목을 보면 영종이 친정을 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맞다.(『명사』와 비교하면 1~2일 정도 날짜 차이가 난다) 그런데 황제가 이끌고 갔다는 병력이 8만이 전부라고 한다. 그리고 저 숫자가 명의 편제와 실상을 감안하면 50만이나 그 이하 6자리 숫자의 병력보다는 설득력이 높다.(.............)

개인적으로 명에 대해서 "전근대 최고수준의 사이버국가로, 모든것이 "서류상으로는" 완벽하게 갖추어져 돌아갔다. 다만 그걸 굴리는게 인터넷이 아니라 관료진이었다"고 하던 참에 이 기록을 보니 정말 대단한 나라이긴 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덧글

  • 함부르거 2017/12/10 04:46 #

    사이버 국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주 적절한 워딩 같습니다. ^^
  • 연성재거사 2017/12/10 22:55 #

    (서류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운영되는 나라(...)이니 그 정도 호칭은 붙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_-;;;
  • 까마귀옹 2017/12/10 08:56 #

    '고려천자'가 40여년 동안이나 파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명나라가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돌아간 이유도 이 때문이라죠?
  • 연성재거사 2017/12/10 22:56 #

    (서류상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굴려주는 관료진의 위엄 ㄳ
  • Fedaykin 2017/12/11 15:30 #

    명군 규모가 조선 기록에서 나오다니...갓조갓록 당신은 없는게 무엇인가...100%믿으면 곤란하겠습니다만 대단하긴하네요
  • 연성재거사 2017/12/12 01:30 #

    그런데 저게 실제 명의 실상을 감안하면 6자리 숫자보다 훨씬 현실성이 높다는 게 함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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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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