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과 당쟁, 그리고 내로남불 by 연성재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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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의 주장은 원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치에 참여하면서 그들은 중대한 착각을 한다. 어떠한 법과 제도도 완전할 수는 없고, 비리나 부조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자는 의미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문제에 접근할 때는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하고 신중하고 정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매커니즘이 내재되어 있다. 혈기왕성한 학생이나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 사람, 국가와 사회의 구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문제를 단순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이 제도만 바꾸면, 지배층이 결심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중략).......정계에 들어왔어도 그들은 이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조금은 깨닫고 당혹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에 대한 당혹감과 자신들의 무능력에 대한 자각, 현실적·기능적 논의를 수용하면 부패한 집권층의 주장에 동조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법과 제도에 대한 사고를 포기하고 아주 단순한 잣대로 개혁을 추진했다. 그들은 관료를 군자와 소인으로 양분하고 정책과 제도를 평가할 때도 제도의 기능과 매커니즘을 보고 판단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것이 군자에게서 나왔는가, 소인에게서 나왔는가 또는 현시점에서 군자들에게 유리한가, 소인들에게 유리한가로 판단했다.
........현실에서 어떤 현상과 부작용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다른 사람이 반론을 제기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 걸 고민하거나 반대하는 놈은 틀림없이 소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정치에 들어오니 이런 태도만으로는 버티기 곤란하다. 수단과 편법이 필요할 때가 있고, 이상적이라고 믿었던 제도가 막상 시행해보니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중략)......여기서 전가의 보도가 나온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임용한 지음, 2012 『시대의 개혁가들』 시공사, 63~64쪽)

나는 군자고 너희는 소인이다. 군자에게서 나온 정책은 무엇이든 옳고, 소인에게서 나온 것은 무엇이든 그르다......(중략)......이 편리한 이분법은 정책에 대한 고민을 실종시킨다. 그냥 자신들의 머리에서 나온 정책이면, 그것이 설사 10대 시절에 고대의 역사를 보고, 술자리에서 떠들다가 튀어나온 생각이라도 세상을 바꿀 위대한 정책이다.
이들은 정권을 잡고, 거의 장관급까지 승진하고서도 이 버릇과 이런 사고의 위험성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더 위험한 함정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갔다. 선민사상이 주는 교만에 빠진 그들은 주변 사람과 정치상황을 뭐든지 제멋대로 파악했다.
(위 책, 66~67쪽)

당파간의 결속은 강력한 가족적 또는 씨족적 유대에 의하여 강화되었다. 유교가 충성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적 유대감이 분별없이 충동적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교주의자들의 매우 현저한 특징인 자기 결벽적 도덕주의는 이 또한 정치 권력을 둘러싼 정쟁과 현실 문제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야기되는 적대감을 강화하고 영속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적대자의 나쁜 행동은 도덕적으로 가증스러운 행위로서 사후에조차 처벌해야 하는 것이었다.
(제임스 B. 팔레 지음, 이훈상 옮김, 1993 『전통한국의 정치와 정책』 신원문화사, 87쪽)

사림의 분열은 스스로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확신에 기인했다. 분열을 정당화하는 기제는 스스로 확신한 도덕적 정당성이었다. 그들은 공론의 이름으로 갈등했고 분열했다.......(중략).......도덕적 확신에 찬 사림은 결국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장磁場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되었다. 그들은 정치세력 간의 시비가 아닌 민생개혁에 대한 추구가 자신들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지 못했다.
(이정철 지음, 2016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너머북스, 469~470쪽)

당파성론이나 성리학 공담론을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사에서 적어도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성리학이 그토록 강조하는 도덕적 인간상이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다. 소위 수신修身와 군자-소인론이 강조되고 이게 정치판으로 옮아가면서 정치적 논쟁이 현실적 타당성과 합리성 보다는 도덕적/명분론적 공격과 여론몰이로 흘러갔다. 그리고 이것이 조선의 정치판에 참여하는 계층을 궁극적으로는 매우 협소하게 만들었다. 그 상황에서도 그들이 가진 기제는 분명했다. "우리가 군자이다". 하지만 이 내로남불의 결과는 파국이었다. 조광조는 이를 원초적으로 보여주었지만, 같은 프레임에 갇혔던 후배 사림들은 이 문제를 보지 못했고, 붕당이라는 이름 아래 분열했다.

과연 이것이 단순히 "당파성론"이라는 식민사학의 프레임에 갇힌 조선사로 치부하면 그만일 이야기인지, 아니면 현재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인지 매우 고민된다.


덧글

  • 2017/09/24 19:3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9/24 23: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홍차도둑 2017/09/25 00:17 #

    요즘의 상태를 보면...
    머 앞뒤 안가리고 적폐부터 외치면 되는 세상이라...거 참...

    요즘 히딩크 논쟁 보면서 어이가 없을 따름이지요 머.
  • 연성재거사 2017/09/25 00:19 #

    그런 점에서 역사의 교훈이 과연 얼마나 유효한가 생각하게 됩니다.(커피)
  • 함부르거 2017/09/25 18:14 #

    인간이란 게 고민하고 성찰해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배운대로, 살아온대로 편한 길로만 사고하는 걸 선호하는 생물이다보니 말입니다. 확증편향이라는 아주 좋은 심리학 용어가 많은 걸 설명해 주지요.
  • 연성재거사 2017/09/26 00:53 #

    뭐 정치싸움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모습이긴 합니다만, 조선의 경우는 소위 군자-소인론이 더해지면서 부작용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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