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민본주의, 민주주의 정치학政治學·경제학經濟學

조선왕조 내내 유교-좀더 구체적으로 성리학-는 지배이념으로 굳건하게 자리잡았고, 이 체제를 유지시켜준 저변에는 민본주의가 있었다. 실제로 동시기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보면 조선에서 민본이념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 다양한 측면에서 드러난다.

정조의 화성행차가 묘사된 능행도의 일부. 왕의 행차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나와서 구경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조선에서 국왕의 행차는 백성들에게 퍼레이드 축제인 동시에, 억울한 일을 직소直訴할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황제가 지나갈 때 행렬에서 떨어져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던 중국이나 쇼군의 행차때 엎드려 예를 표해야 했던 일본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조선사 연구의 일각에서는 이러한 민본주의를 현대의 민주주의와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북한은 논외로 하면)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확고하게 자리잡은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유교적 민본주의가 강력하게 작용했던 조선에서 전통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유교 자체에서 민본주의는 맹자로부터 시작하여 그 나름대로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서구 세계를 접하고 그들의 정치 체제를 수용하기 전까지는 "민주주의"로 도약한 적은 없었다. 박찬승 교수의 서술이 보여주듯이, 한국에서 본격적인 민주정에 대한 이해와 도입이 나타나기 시작되는 19세기 말엽이면, 이미 적지 않은 서구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 뒤였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박찬승. 돌베개. 2013) 1장 참고)
이러한 정황은 "민본"과 "민주"에 "전통을 대입하여 연결하려는 시도"에 무리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유교에서 "민본주의"는 "민주주의"로 도약하기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子曰 "唯上知與下愚不移."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윗급의 지혜 있는 사람과 아랫급의 어리석은 자만은 바뀌지 않는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쓸데없는 뱀발: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을 "바보에게는 듣는 약이 없다"고 풀이했는데,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有大人之事, 有小人之事. 且一人之身, 而百工之所爲備, 如必自爲而後用之, 是率天下而路也. 故曰或勞心, 或勞力.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天下之通義也.
대인大人이 할 일이 있고, 소인小人이 할 일이 있다. 또한 사람에게는 백공이 만든 것들이 다 필요한데, 만일 반드시 모든 것을 손수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천하의 사람들을 이끌어 길에서 바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勞心], 어떤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한다[勞力]. 노심자勞心者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노력자勞力者는 다른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다스림을 받는 자는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고, 다스리는 자는 다른 사람이 먹여 살리는 것이 세상에 두루 통하는 이치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 上]》)

유교는 잘 알려져 있듯이 덕이 있는 "군자君子"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하는데, 이는 역으로 설명하면 지배논리를 "군자론"으로 정당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공자의 말이 보여주듯이 유교는 인간의 이성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를 맹자의 말에 대입해서 풀이하면 "윗급의 지혜 있는 사람"이 "대인(군자)"으로서 "노심자"가 되어 정치를 맡고, "아랫급의 어리석은 자"는 "소인"으로 "노력자"가 되어 생산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유교에 내재된 민본주의의 확대에 자꾸 논의의 초점을 두려고 애쓰지만, 기본적으로 유교에는 신분차별론이 전제되어 있다.

또한 유교는 인간과의 관계를 강조하는데, 이 "관계"에는 위계질서가 반영되어 있다. 가족관계에 따라, 그리고 그것이 확장된 의미인 국가에서 자신이 자리한 위치(신분)가 모두 있다. 이것이 소위 "명분"(明分)인데, 이 명분에 관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中略)......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자로가 여쭈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 의지하여 정치를 한다면, 선생님께선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 세우겠다.......(중략)......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곧 말이 순리하지 못하게 되고, 말이 순리하지 않으면 곧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곧 예악이 흥성하지 못하게 되고, 예악이 흥성하지 않으면 곧 형벌이 적절하지 않게 되며,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곧 백성들은 손발을 제대로 둘 곳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분을 세우면 반드시 말로 설명할 수 있고, 말로 설명하면 반드시 실행될 수가 있는 것이다. 군자는 그의 말에 있어서 구차한 일이 없어야만 하는 것이다."
(『논어』 《자로子路》)

다시말해, 신분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정치의 첫번째 단계라는 것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말하면, 주어진 자질에 따라서 신분이 나누어지고, 그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소위 君君臣臣父父子子로 대표되는-을 다하는 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사회이다.

반면에 민주주의는, 어원이 말해주듯이 "민중(demos)에 의한 지배(kratos)"이다. 민중이 직접 자신의 대표를 선출하고, 이 과정을 통해 국가의 주요 현안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형태이다. 동양식 표현을 빌리면 "군자"를 "소인"이 선출하는 형태라는 말이 된다.


그렇게 민본을 외쳤다고 하는 맹자도 이쯤오면 펄쩍 뛸 것이다. 그는 군자가 덕으로 감화하면,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따라올 것이라는 취지에서 민본주의를 말한 것이었지, 선출이나 민중의 직접적 지배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현대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민본주의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현상에 과거를 끼우려는 시도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실제로 유교에는 신분제를 정당화하는 기제도 얼마든지 존재하며, 그렇기에 오랜 시간 그런 체제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은 절대 어려질 일은 없을 것 같은-_-; 게임여신 막둥이로 마무리 ㄳ

덧글

  • 까마귀옹 2017/08/06 17:31 #

    아직도 유교에 대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수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요. 그래서 유교의 민본주의를 통해 유교를 재평가할 필요성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현대의 민주주의와 무리하게 연계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연성재거사 2017/08/06 18:08 #

    개인적으로는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가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_-;
  • 2017/08/06 18: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8/06 19: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8/06 19: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유월비상 2017/08/06 23:04 #

    말씀대로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유교의 민주주의적인 의의를 높게 봅니다. 유교는 전근대적 신분제를 인정하되, 그 신분제가 폭주하지 않도록 상위계급을 견제하는 사상이거든요.
    유교가 집단주의와 인권, 위계서열 문제가 있다지만, 전근대 사회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그랬지요.
    오히려 유교는 정명정신, 민본주의처럼 국가, 고위직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권리를 최소한이나마 인정합니다.

    유교는 전근대 사회 중에서 그나마 민주주의적인 사상에 가깝다고 봅니다.
    말하신 한계 때문에 자생적인 민주화/근대화는 힘들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그나마 괜찮게 국가를 운영하고, 민주주의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동력은 된다고 봅니다.
  • 연성재거사 2017/08/06 23:26 #

    말씀하신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교화가 깊숙히 자리잡은 조선이 그만큼 민주정의 수용도 빠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 파파라치 2017/08/07 13:07 #

    유월비상/

    유교는 정확히 말하면 "상위계급"을 견제하는 사상이 아니라, "군주"를 견제하는 사상입니다.

    즉,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i.e. 士 계급을 무시하면), 도덕의 담지자인 士 계급이 군주를 방벌할 수 있다는(그리고 새로운 군주를 받들 수 있다는) 사상이지, 민중이 士 계급의 지배를 분쇄할 수 있다는 사상이 아닙니다. 통치 능력을 갖춘 계층이 소수의 특권층에 불과하던 시대의 한계이기는 하죠.

    단, 어느 나라나 민주화를 누구보다 강하게 갈망하는 계층은 중류 지식인 계층인데, 동아시아의 경우 이들 중류 지식인 계층이 군주에의 맹목적 복종보다는 대의를 강조한 유교적 망탈리테에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 위장효과 2017/08/12 07:34 #

    반대로 유교의 저 명분사상과 상명하복이 아주 제대로 잘못 결합해버리면 참 골 때리는 사태가 발생하죠. 저 노심자-노력자의 대비도 노심자가 정작 노력자를 그저 빵셔틀정도로만 인식해버리면서 현세지옥의 강림을 제대로 보여준 경우가 비일비재했고...(역시 사상은 좋은데 그걸 운용하는 인간이 문제...)

    덧. 요즘 93라인들이 맏언니 스물일곱이라고 맨날 놀려먹는데 말이죠...롱리다 곧 서른(반오십! 하고 보미와 은지가 놀려먹던 게 엊그제인데)되는데도 외모 맏언니 타이틀은 계속 유지될 거 깉지 말임다. (일단 롱리다가 서른되도 어느 실력파 걸그룹의 누구처럼 성인돌 될 일 가능성 자체가 매우매우 희박하니...)
  • 연성재거사 2017/08/13 23:03 #

    유교가 가진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봐야겠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유교에서 민주주의를 찾으려는 시도에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덧: 롱리다는............비주얼 막냉이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반면 막둥이는 비주얼 맏이.............앨범자켓의 사진 보니 이건 무슨 사모님 포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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