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기록문화에서 유의해야 할 점 by 연성재거사

어제 역밸 모임에서 제가 발표했던 것은 『징비록』이 초본에서 간행본으로 바뀌면서 어떤 양상으로 변했으며,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는지에 대한 발표였습니다. 발표내용 자체는 그동안 『징비록』 연재 시리즈로 올렸던 내용과 많이 겹치기 때문에 다시 포스팅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결론에 부연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조선이란 나라를 보는데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이 조선의 지배계급이 폭이 좁고 제한적이며, 때문에 엄격해 보이는 규정들도 알고 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룰(rule)'이라는 것입니다. 간혹 과거제도에 대해 실력위주 인재등용이라는 환상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중국이건 한국이건 과거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제력을 요구로 하는 것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제도는 "정치보스를 양산하는 시험장"으로 변해갔습니다. 여기에 더해 조선은 장원급제는 가급적 경향출신에게 주는 것이 관행이었고, 이런 체제는 조선의 정치판을 좁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통계를 내 본 결과 나타나는 과거급제자/관리 출신을 보면 가문과 지역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 명석하다는 일화를 쏟아낸 유성룡도 이 관행에 걸려 과거에서 장원을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공신이나 재상급이 아닌 지방 사족가문이었으니까요.(...) 송시열도 이 관행에 걸려 장원을 못할 뻔(!!!) 했는데, 마침 시험관이던 최명길(인조반정 1등 공신)이 알아봐줘서 장원급제를 했다고......(...)......이걸 알고나면 구도장원공 이이가 사람으로 안 보일 겁니다.-_-;

게임판이 좁으면 공식적/암묵적 '규칙'이 생기기 마련이고, 실제로 조선이 그랬습니다. 공식적으로 나타난 조선의 청백리 문화라든가, 부정행위가 발각되면 탄핵/파면되었던 것에 대해 공정성과 엄정함을 중요시하던 문화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그들의 게임판에서 지나치게 '튀는' 행위를 했던 것에 대한 '임시퇴장' 조치인 역할이었습니다.
이런 '규칙'은 기록에도 적용되었습니다. 기록이나 저술활동을 하고 이걸 공개적으로 발간하기 전에 그들 나름대로 돌려보면서 내용에 대해 검토를 받았습니다. 좋게 말하면 피드백인데, 나쁘게 말하면 자체 검열활동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난한 선에서' 내용이 다듬어져 결과물로 만들어져 세상에 나왔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기록의 작성/유포 과정에서 사회권력이 작용한 겁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다름아닌 정약용(!)입니다. 정약용은 유배가 끝나고 돌아온 후, 유배시절 지었던 책들 중 1권인 『매씨서평梅氏書平』에 대해 김기서와 김매순에게 질정을 부탁합니다. 김매순金邁淳의 이름에서 "김金"씨 성과 "순淳"자 돌림을 보고 눈치를 채신 분들 있을 겁니다. 넵. 당시 세도가인 노론 안동김씨 가문의 인물입니다. 얼핏 보면 정적같지만 뒤에서 보니 끼리끼리 노는거더라 질정을 부탁하면서 정약용은 다음과 같은 3가지를 부탁합니다.

1. 절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말하지 말라
2. 문제가 있는 부분을 지적하여 머리 부분에 찌를 붙여 달라(코멘트 좀.....)
3. 자신이 죽거든 초본草本을 가져다가 함께 의논하여 태워 없애 달라

공식적으로 유포되어 공론화되기 전에 먼저 자체검열을 하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학술적인 내용 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표현까지도 손질이 되었습니다.

"그 뼈가 이미 허옇다"고 한 말은 바로 약삭빠르고 야박한 입버릇[口氣]이어서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이것은 20년 전에 지은 것이어서 논할 것도 없으나 지금도 조금 취하여 붓을 놀릴 때에는 그와 같은 말버릇이 나옵니다. 곧이어 또 후회합니다만 기습의 병통은 갑자기 제거하기가 어렵습니다. 죽은 지 오래여서 "묘소의 나무들이 벌써 아름드리가 되었다"라는 표현은 좋습니다.
(『다산시문집』20권 「김매순[金德叟]에게 답함」)

"그 떡밥 이미 쉬었어그 논의는 이미 논파된지 오래다"는 뜻의 표현으로 "그 뼈가 이미 허옇다"고 했더니 표현이 속되고 경박하다면서 "묘소의 나무들이 벌써 아름드리가 되었다"고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지적했고, 이를 정약용이 수용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체검열을 거친 결과물이 공적으로 출판되어 유포된 것입니다.

유성룡의 『징비록』이 "『난후잡록』→초본 『징비록』→간행본 『징비록』" 순서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기록이 다듬어진 것을 보면 단순히 시간순서로 정리하고 사실관계를 다듬은 것을 떠나서 이렇게 "사회권력"을 인식한 자체검열을 거친 정황이 드러나는데, 이런 자체검열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심해져서 『실록』에도 반영되게 됩니다. 때문에 조선사를 연구하면서 지나치게 『실록』에 의지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 영화 '사도'의 자문을 맡아주셨던 정병설 교수님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하신 적이 있습니다.

곽명동: 사도의 당쟁희생설과 같은 대중역사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 교수님이 상대방 학자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요. 당쟁희생설이 사도가 노론에 의해 희생당했다는건데, 이것의 문제점이 어떤건지 궁금합니다.
정병설: 두 의견 사이의 차이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승정원일기』를 읽었느냐, 안 읽었느냐의 차이입니다. 『승정원일기』는 왕의 비서들이 기록하는 겁니다. 당쟁희생설의 책은 『한중록』,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떠도는 소문을 합쳐서 쓴 겁니다. 『승정원일기』는 풍부하고 획기적인 자료입니다. 그것으로 사도세자의 인상이 새롭게 나타났습니다. 영화에 나온 상당수 에피소드는 『승정원일기』에 나온 겁니다. 『승정원일기』를 차이에 두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 '사도' GV 시사회에서)

정병설 교수는 연구 과정에서 자신이 『승정원일기』를 참고했고, 이것이 사도세자 당쟁희생설과 자신의 차이점이라고 했습니다. 깨알같은 ㅇㄷㅇ 디스는 논외로 하더라도 간행된 기록물에 의지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를 단적으로 지적하신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년 전에는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 무더기로 공개가 되면서 정조시대 정치사를 전부 다시 써야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때 나왔던 연구서에서 유봉학 교수는 역시 해당 글에서 대차게 ㅇㄷㅇ을 디스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간찰 자료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각처에 흩어진 채 제대로 수집·정리되어 있지 않고 일부 공개된 것도 탈초脫草 문제 때문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중략)......앞으로 간찰 자료의 활용은 정치사 연구의 수준을 높이는 데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간찰과 더불어 정치사와 사상사 연구의 1차사료로 근래 주목받고 있는 일기日記와 필기筆記류 자료 역시 간찰과 마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한계를 인식하면서 적극적으로 발굴해 나간다면 정치사 연구의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간 조선시대 정치사 연구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이 가장 중요한 원자료로 활용되어 왔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특히 정조시대 이후로는 『일성록日省錄』과 『내각일력內閣日曆』 등 방대한 분량의 연대기年代記 자료들이 그를 보완하면서 정치사 연구의 기본 자료 역할을 해 왔다......(중략)......
그럼에도 이들 자료를 활용하는데 각별히 유의해야 할 점은 이 자료들이 어떤 사건과 사안이 발생한 후 일정한 시점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정리된 자료라는 점이다. 이들 자료는 원자료로서 방대한 내용을 수록한 종합적 자료지만 어디까지나 1차사료는 아니다.
......(중략)......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의 경우 민감한 정치적 사안과 관련된 자료들이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삭제된 사례들이 잘 알려져 있다. 문집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중략)......결국 이러한 자료들의 사료로서의 한계는 『정조어찰첩』과 같은 간찰 자료 및 김조순의 「영춘옥음기迎春玉音記」, 이서구의 『척재자술惕齋自述』, 황윤석의 『이재난고頤齋亂藁』 등 근래 학계가 발굴해내고 있는 관련 1차사료에 의해 보완되어야 하고 상호 교차검증하는 방법에 의해 기록의 사실성 여부가 점검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1차사료의 발굴과 자료의 확충은 정치사 연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아울러 이미 잘 알려진 자료라 할지라도 학계의 연구 진전에 따라 선입관에서 벗어나 다시 읽고 점검함으로써 새롭게 활용될 수 있다.
(『정조의 비밀 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박철상 등저. 푸른역사. 2011) 「정조시대 정치사 연구와 사료-'정조독살설'의 오류 비판(유봉학)」 p.251~253)

우리가 흔히 조선더러 기록의 나라라고 하며 조선의 기록유산에 대해 상당히 고평가를 하고 있지만, 역사학의 성과가 누적되면서 "이렇게 출판된 기록의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봉학 교수의 지적대로 앞으로 여러군데 흩어져 있고,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고문서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그에 따라 기존의 자료들을 다시 재검토하는 작업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검토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조선의 기록유산"에 대해 다른 방향의 논의가 생성되어 역사를 공유하는 대중들에게 인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은 막둥이와 케이로 마무리 ㄳ

덧글

  • 2016/02/22 00:3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22 00: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Masan_Gull 2016/02/22 03:05 #

    승정원일기를 읽은사람 -> 사도 당쟁희생설에 반대하는자 -> 노론에 부화뇌동하는자 ->ㅇㄷㅇ 센세에게 반대하는자 -> 매식자(!)
    그러므로 승정원일기를 읽는자 = 매식자!

    하여간 그놈의 노론=흉쌍도(...)=우리나라를 말아먹었고 지금도 말아먹은자 구도는 도대체 없어질 생각을 않아서 말이죠
  • 연성재거사 2016/02/22 18:26 #

    근데 ㅇㄷㅇ이 딱히 그런 얘기는 안한 걸로 아는데 도대체 노론=ㄱㅅ도 구도는 대체 어디서 나온건지.....(............)
  • 역사관심 2016/02/22 05:09 #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단에 크게 공감합니다. 교차검증 연구의 중요성과 새로운 사료에 대한 필요연구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구요.

    "우리의 기준은 과거에 대한 해석이라는 측면에서는 절대적인 것이다. ... 그러나 그 과정 자체는 여전히 진보하는 것이고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의 방향감각, 즉 과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우리가 전진함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카 선생의 이런 말을 옮길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라 생각합니다.
  • 연성재거사 2016/02/22 18:27 #

    자료의 대대적 발굴과 현재 보존현황의 파악도 시급해보입니다.
  • 5thsun 2016/02/22 07:06 #

    구두장원공ㅋ
  • 연성재거사 2016/02/22 18:45 #

    실력으로 1번만 해도 굇수 인증인데 그걸 9번(.................)
  • 5thsun 2016/02/22 19:08 #

    실력으로 9번 할 수 있어도 1번만 하는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구도장원이라는것 하나만 봐도 그게 실력이든 나눠먹기식 비리든 아니면 각 시험마다 장원 수집하는 콜랙터 기질이든...

    좋아보이진 않네요.
  • asianote 2016/02/22 07:09 #

    일본에서 말하는 혼네(초간본)와 다테마에(최종본)의 차이 정도로 보이는 느낌입니다. 조금 무섭네요.
  • 연성재거사 2016/02/22 18:28 #

    『징비록』만 해도 간행본에서 상당히 많이 다듬어져서 그렇지, 초본을 보면 유성룡이 "하늘이 도운 것"이라고 한 게 "이런 왕 밑에서 전란을 극복한게 하늘이 도운거야!"라고 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 전위대 2016/02/22 08:17 #

    백지원이가 지는 승정원일기만 읽는다고 노가리 깠는데 걔 한자는 읽을 줄 아나...?
  • 위장효과 2016/02/22 12:27 #

    과연 펴보기나 했을까요????
  • 연성재거사 2016/02/22 18:29 #

    한글로 된 책도 제대로 읽나 의심이 되는 판에 무슨.......(풉)
  • 로자노프 2016/02/22 09:22 #

    1. 근데 통계자료를 보면 급제자 중 최소 50% 이상은 평민층이나 한미한 집안 사람이 차지했다는 점도 아주 고려는 안 할 수 없을 겁니다. 즉 중하위 관료쪽은 의외로 문이 열려있었을 개연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 뭐. 사실 전근대 국가에서 관리들 출신이나 계층이 제한적이지 않은 나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급입니다만.

    2. 자체검열 역시도 좀 유사한 측면이 있고요. 중국의 경우는 명청시기에 조선보다 한술 더 뜬 경향이 있었고(여긴 글자 하나 트집잡아서 골로 보내는 일이 잦았으니)

    3. 사실 정병설 교수의 경우 승정원일기도 많이 참고했지만 국문학과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동일 사건에 대해 승정원일기나 실록이 한중록과 다르게 기록한 경우 한중록을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하들이 왕에게 의도적으로 왜곡 보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제 경우에는 그 점이 좀 거슬리더군요.전 한중록의 신뢰성을 나쁘지 않게는 봅니다만, 그래도 걸러봐야 될 측면이 있다고 봐서요.(그 점에서는 한중록에 대한 제 관점은 이덕일과 좀 유사하다면 유사할 것도 같군요.)

    4. 뭐. 유성룡의 경우 그래도 그 자신의 능력 덕에 그 이후 풍산 류씨는 적어도 안동 내에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양반가문이 됩니다. 당장 양반가들이 널려있던 안동, 예천 지역에서 진성이씨 다음 가는 서열을 보유한 건 대단하다고 밖에는....(뭐 사실 그 지역들은 진성이씨가 1등, 그리고 풍산 류씨와 의성 김씨가 공동 2등, 기타 다른 가문들 순서이긴 합니다만.)

    5. 문헌정보학과에서도 유사한 이야기를 합니다. 거기선 아예 정설화. 다만 문정에서 그런 말을 하는 근거는 지방 기록들이 세초나 구한말, 일제 강점기, 6.25 전쟁을 거치면서 0이라고 해도 좋은 만큼 몽땅 날아가버려서...

    6. 덧글이 길었는데 사실 1,2번의 경우 이런 말을 안 하면 요즘 세상에서 국까들이 지들 좋을대로 취사선택해서 자기네들 논리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양해바랍니다.
  • 연성재거사 2016/02/22 18:35 #

    1. 전근대 기준으로 볼 때 딱히 문제가 될 체제는 아닙니다. 현대에도 상위계층이 한정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말입니다.

    2. 뭐 사실 조선도 나중에 가면 필화문제가 터집니다. 영조만 해도......(...)...

    3. 사실 그걸 딱히 뭐라고 하기도 힘든게, 문제가 될만한 부분의 『승정원일기』가 작살이 난 상태에서 그걸 바탕으로 『영조실록』이 작성되었고, 그 공백을 채울 기록 중 제일 신뢰도가 높은게 『한중록』이어서 뭐라고 하기도 힘듭니다.

    4. 그런데 재상급이 안 나오니......(...)...

    5. 그래도 각잡고 뒤지고 파면 꽤 많이 나올 것 같긴 합니다만.......딴데 신경쓰고 있으니 문제죠.
  • 홍차도둑 2016/02/22 18:38 #

    1. 관련되어 나온 책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의 9급 관리들"
    제가 한권 가지고 있는데 로자노프님의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정도 있더군요. 지금 제가 모바일로 하는지라 책 이름 뒷구절의 기억이 애매합니다. 검색시엔 "조선의 9급" 으로 찾으시길
  • 5thsun 2016/02/22 18:59 #

    모 교수님은 1번 관련 문제를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

    과거 밖에 출세할 방법이 없으니 돈은 있지만 출신이 약한 지방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교육이 발달을 해

    근대 한양에서 맨날 놀던 놈들은 실력이 안되서 정시에서는 이 사교육 받은 지방 놈들한태 밀려

    그럼 방법은 간단하지.

    관리는 한양 놈들만 치를 수 있는 별시로 특채를 하는거야.

    별시는 갑자기 나오니깐 지방에서 사교육 받던 넘들은 쫓아와서 치를 수가 없거든

    조선이 후기로 넘어갈 수록 이 별시 출신 관리들로 채워져.

    그럼 사교육 받고 정시로 급제한 녀석들은 어떻게 되냐고?

    임용을 안하면 되지.

    오래 기다리다가 별볼일 없는 하급 관리로 들어가거나

    그것도 안되면 집에돌아가.

    과거 급제자 타이틀은 있는데 관리는 못되고 집에 가면 할일이 뭐가 있겠어.

    사교육 시장에 뛰어드는거지.

    그게 반복이 되서 조선 후기 지방(평양이라고 했던거 같지만 가물가물하니 그냥 지방이라고)에는 강력한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되

    사교육 -> 급제 -> 비임용 -> 사교육시장 참전 -> 급제 이렇게 계속 사이클이 도는거야.

    그러니 한양 사대부집안들은 3년마다 치루는 정규 과거로는 급제가 힘드니 더더욱 별시에 메달리는 사이클이 반복되는거지.

    ===========================

    검증은 안해봤고, 그런 말을 들어는 봤습니다.

    한미한 집안 급제자들이 어떤 관리에 임용되었는지를 확인해 보면 사실인지는 검증 가능하겠내요.
  • 아빠늑대 2016/02/22 09:22 #

    그러한 조선 사회에서, 기록된 1차 사료를 충실하게 보충하려면 역시 고택의 대들보 윗쪽을 철거해...야... (응?)
  • 연성재거사 2016/02/22 18:29 #

    근데 각 문중과 개인이 소장한 기록도 제대로 열람하기 힘든게 현실입니다.(............)
  • 함부르거 2016/02/22 10:08 #

    관료들이 문서 결재 올리면서 검토받는 걸 민간에서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_-;;;;;;;
  • 연성재거사 2016/02/22 18:31 #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이었던 거죠.
  • 위장효과 2016/02/22 12:27 #

    그리고 오늘도 양다리 걸치는 거사님이야말로 진정 매식자...(도주)
  • 연성재거사 2016/02/22 18:29 #

    거기 서라눙!
  • 홍차도둑 2016/02/22 22:08 #

    http://xuecheng.egloos.com/4252269#219824.01

    움직일 수 없는 이 증거!
  • 바다루 2016/02/22 14:51 #

    이덕일 왈, "내가 제시하면 1차 사료, 네가 제시하면 판본 문제로 논점 흐리기"(...)
  • 연성재거사 2016/02/22 18:30 #

    오항녕과의 키배에서 판본문제를 "지엽적인 문제"라고 하면서 사료검토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거 자백했죠.
    사실 『사기』 《태강지리지》 건도 꽤나 큰데 말입니다. ㄲㄲㄲ
  • 홍차도둑 2016/02/22 18:39 #

    이전에도 설파하신대로 ㅂㅣ교연구라...호오...
  • 연성재거사 2016/02/22 18:44 #

    아니, 이 아저씨가??!
  • 위장효과 2016/02/22 22:11 #

    과연!!!!

    그런데 굳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링크하실 필요는 없슴다. 이 얼음집에서 아무 글이나 클릭해도 증거는 와르르르르르르 쏟아지는고로...

    ㅂㅣ교연구...중요하지요...암요.
  • 행인1 2016/02/23 22:50 #

    여러 사정으로 널리 보여주지 못하는 글을 옛날에도 많았을테니...;;;
  • 연성재거사 2016/02/24 02:41 #

    그런데 그런 글들이 중요한 정보를 내포하고 있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홍차도둑 2016/02/24 22:03 #

    고려의 모 학자께서 남기신 집문을 본 후손이 "이거 공개되면 집안 멸족이다"하고 아주 불살라버리고 그 내용을 본 일족들은 평생 셧더마우스 하고 다녔다는 일화가 생각나네요...
  • rezen 2016/02/25 00:00 #

    아는 선생님 중에 여말선초 역사를 위에 나온것처럼 다르게 바라보고자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흔히아는 여말선초 역사를 태종과 세종이 믿어줬으면 하는 역사라고 표현하시며 정종과 태종의 세자교체에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시더군요.
  • 연성재거사 2016/02/25 17:03 #

    사실 그게 조심해야 하는게, 자칫하면 사료를 자기 멋대로 생깔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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