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의義가 아니고, 인仁도 아니다 by 연성재거사

昔承桑氏之君, 修德廢武, 以滅其國. 有扈氏之君, 恃衆好勇, 以喪其社稷. 明主鑒茲, 必內修文德, 外治武備. 故當敵而不進, 無逮於義矣, 僵屍而哀之, 無逮於仁矣.
옛날에 승상씨承桑氏라는 임금은 덕을 닦는다고 군비를 폐지했다가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유호씨有扈氏라는 임금은 군대를 믿고 전쟁을 좋아하다가 사직을 잃었습니다. 명철한 군주는 이를 거울삼아 안으로는 문덕文德을 닦고 밖으로는 군비[武備]를 다스립니다. 적이 쳐들어왔는데도 나아가 공격하지 않는 것을 의롭다고 할 수 없으며, 차갑게 쓰러져 죽은 시신을 보고 애통애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자병법吳子兵法』 《도국圖國》)

동양에서 군주는 흔히 문무文武를 함께 갖추어야 한다고 얘기된다. 여기서 오자가 드는 예는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 경우로 보이지만, '자신의 가치로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경고인지 나타난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추구한다고 해서, 상대(잠재적인 적)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인도적 측면(그리고 국가 재정 측면)에서 보면 전쟁은 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화를 원한다고 해서 군대를 해산하면 나라가 평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쟁이 터진다.
우리는 이런 판단이 빗나간 결과 벌어진 참극을 잘 알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승전국들은 전쟁재발을 막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다. 독일에게 물린 막대한 배상금과 무장제한이 자주 언급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럽지도의 개편이었다. 독일의 동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분할했고, 이들의 재결합을 견제하기 위해 폴란드를 독립시켰다. 그리고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합쳐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신생국을 만들었다. 지도를 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드러난다.


독일국경이 크게 보면 사각형 모양인데, 체코슬로바키아는 이 사각형의 밑자락에 박혀있다. 만약 독일이 선전포고를 했을 때 체코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폴란드·소련이 연합해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을 통해 공격해오면 독일은 배에 칼이 박힌 상태로 싸워야 했다.
독일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이 신생국들이 군사적으로 힘이 별로 없었던 것이었는데, 여기에 유럽 주요국들의 오판이 독일을 도와주었다. 1938년 히틀러는 기습적으로 오스트리아를 병합했고, 체코를 정리해 독일에게 전략적으로 유리한 구조로 국경을 정리하고자 했다. 히틀러가 구실로 삼은 것은 1차 세계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에 흡수된 주데란트에 350만의 독일인이 살고 있고, 이들이 체코슬로바키아에 강제 편입되었다는 것이었다. 주데란트에서 주민간 충돌이 생겼고, 독일군은 국경 주변에서 기동훈련을 벌였다.
1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당시 유럽인들의 관심은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말만 많을 뿐 행동이 없었고, 영국의 체임벌린은 전쟁만 막으면 된다는 판단에 독일로 날아가서 협상을 벌였다. 독일이 주데란트만 병합하면 더이상 영토적 욕심을 벌이지 않겠다는 확약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히틀러가 여기에 동의하면 영국과 프랑스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압박해서 주데란트를 반환시켜주기로 했다.
체임벌린은 전쟁을 막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독일로 날아가 협상을 벌였고, 히틀러는 그의 조건을 수락했다. (어차피 지킬 생각도 없었지만) 이렇게 영국은 독일의 배에 박았던 칼을 스스로 없앴고, 여기에 소련이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독일의 전략적 고민을 없애버렸다. 스탈린 역시 전쟁을 극도로 피하고자 했는데, 정권이 막 들어선 시점에 전쟁이 벌어지면 군부가 성장하고 혁명 기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희망이 현실적 판단을 흐려버렸고, 소련은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를 병합해도 소련만 침공하지 않으면 참견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사실,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의 전쟁수행에 큰 필요가 없는 지역들이었다. 이 지역들이 가지는 가치는 단 하나, 소련-특히 전쟁물자인 구리와 석유가 풍부한 우크라이나로 통하는 통로였을 뿐이다. 전쟁을 피하겠다는 생각에 소련은 (휴지조각이 될) 종이 한 장과 국경방어벽을 맞바꿔버린 것이었다.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은 더 나아가 독일의 마지막 전략적 딜레마도 해결해주었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고민은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독일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가능한 한 단기간에 프랑스를 굴복시킨 후 동쪽으로 군대를 돌려 러시아(소련)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은 독일에게 프랑스를 공격하는 동안 소련이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고민거리를 없애주었고, 그렇게 독일이 전쟁을 일으킬 조건이 갖추어졌다. 그리고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는 수많은 희생을 겪으며 무서운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가족을 잃은 폴란드 소녀가 시체를 발견하고 우는 사진

오자는 마지막 말에서 이렇게 못박는다. "적이 쳐들어왔는데도 나아가 공격하지 않는 것을 의롭다고 할 수 없으며, 차갑게 쓰러져 죽은 시신을 보고 애통애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장군이 되기 위해 아내의 목을 벤 것으로 악명을 얻은 오자이지만, 그는 이 말을 "전쟁을 하다 보면 희생자가 나오기 마련이니 거기에 연연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국민에 대해 애도하는 것은 통치의 본분이다. 하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전쟁에서 희생된 국민에 대해 애도할 것이 아니라 군비軍備를 갖추어 전쟁을 막고, 혹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패전하거나 불필요한 희생이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의義이고, 인仁의 정치이다. 현상유지에 골몰하거나 평화에 집착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덧글

  • 로자노프 2016/02/10 17:00 #

    체코슬로바키아, 특히 체코의 공업력은 무시하기가... 그리고 사실 스탈린의 경우 체코슬로바키아를 도와주려는 시도는 했습니다. 문제는 소련에 대한 감정이 정말 안 좋은 폴란드가 군대 통과를 절대 거부... 그리고 밍기적거리는 사이에 뮌헨협정... 더군다나 독소불가침 조약을 스탈린 입장에서 쉴드치자면... 처음에는 스탈린이 영국, 프랑스와 함께 나치를 조질까 했는데 하필 영국 대사가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사단이 고작 4개..."요런 말을 해버리는 바람에 스탈린의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신뢰도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거기다 스탈린은 독소불가침조약이 일시적인 걸 잘 알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문제라면.. 여기서 스탈린은 좀 상식적인 판단을 했다는 겁니다. '설마 영국하고 전쟁 중인데 또 우릴 공격해서 양면전쟁을 하겠어? 1차대전때 그 짓 하다가 털린 놈들이?' 틀린 판단은 아니었지만 히틀러는 또라이였다는 문제가.. 제가 알기로는 대숙청 이후 전열을 정비하려고 일시적으로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은 거란 설도 있던 걸로 압니다.

    추가: 더군다나 나치 등장으로 인해 좀 파탄이 나긴 했지만 소련은 국가 성립 이래 영,프보다는 독일과 친했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영,프는 적백내전때 소련을 엎어버리려고 했던 놈들이지만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 성립 이후 서로 뒷거래도 하면서 하하호호 거리던 나라였으니...
  • 위장효과 2016/02/10 16:48 #

    거기다가 특명대사로 온 영국장군이 흐리멍텅하게 대답하는 바람에-그런데 그 장군 본인이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본국 정부의 정책 자체가 흐리멍텅하니, 대표라지만 뭔가 확실한 약속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지라 결국 본인 답변도 흐리멍텅할 수 밖에- 일이 꼬였죠. 정작 프랑스 측은 그래도 괜찮은 제안을 했었습니다. 그정도라면 스탈린도 믿을만하겠다 싶었으니까요. 영국이 아주 제대로 초를 친 셈이죠. 어차피 평시 영국육군은 그 4개 사단정도가 상비상태이고, 대신 영국은 세계 최강 로열 네이비가 주된 활약하는게 전통적인 영국식 전략이었으니 영국으로서는 별로 달라진 것도 없겠지만 소련은 러시아이래 아주 전형적인 대륙 세력이었단 걸 고려했어야지요.

    차라리 로마노프 왕조가 협상상대였다면 "섬나라 놈들이야 항상 그랬으니까 뭐..."하고 수긍했겠지만 신생 볼세비키 정권에게는 "뭐냐 이 공짜손님들은?" 이렇게 보였을 겁니다.
  • BigTrain 2016/02/10 22:01 #

    맘만 먹으면 40개 사단 이상을 꼴아박을 생각도 있었던 스탈린에게 4개 사단 운운했다가 "사실 2+2개 사단 ㅜㅜ" 이랬으니 당시 고립 위협에 시달렸던 스탈린 입장도 이해 안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체임벌린이나 스탈린 모두 히틀러가 얼마나 광인인지를 몰랐으니.
  • 연성재거사 2016/02/11 13:31 #

    영국이나 소련이나 나름의 사정은 있었는데 상황오판을 했고, 그 대가가 너무 컸죠. (...)
  • 위장효과 2016/02/12 20:40 #

    Rule Britannia를 부르던 리즈 시절에야 Bank of England등의 수단으로 대륙의 동맹국-이라 쓰고 몸빵이라 읽는다-에게 무제한으로 자금 퍼줘서 싸우게 만들수나 있었지 1차 세계 대전에 대공황등 거치면서 경제가 쪼그라든 상황에서 그런 방법을 쓸 수도 없고...참 난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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