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베껴쓰며 공부하고, 책을 얻다 by 연성재거사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어머니의 소설책 解明님 글에서 트랙백

내가 예전에 포스팅한 적도 있지만[링크], 조선시대 책의 가격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비쌌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자니 책을 안 볼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나온 방법이 책을 베껴쓰는 것이다. 필사로 책을 만드는 방법은 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인쇄술이 등장한 후에도 책의 유통방식으로 쓰였다. 특히 조선의 경우 금속활자의 비용대비 편익이 낮았고, 목판의 값도 상당했기 때문에 필사의 형태로 책이 많이 유포되었다.

이렇게 책을 베껴쓰면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박제가朴齊家(1750~1815)는 어린 시절 아버지 박평이 매달 종이를 주면 수첩 크기로 작게 오려 제본을 하고, 여기에 유교 경전을 비롯한 고전을 베껴넣었다. 11살 때까지 그 책들은 『대학』, 『맹자』를 포함해 9종으로 불어났는데, 그는 이 책에 직접 비점을 찍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연들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아마 이덕무李德懋(1741~1793)일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책에 미친" 사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덕무는 18세 때 자신의 집을 구서재九書齋라고 이름붙였다. 여기서 구서九書는 책에 관련된 9가지 행동인데, 다음과 같다.

독서讀書-책을 소리내어 읽음
간서看書-책을 눈으로 읽음
장서藏書-책을 보관
초서鈔書-책을 보며 중요한 부분을 필사
교서校書-책을 교열해 가며 읽음
평서評書-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이나 전체에 대한 감상이나 평을 남김
저서著書-다른 사람의 책을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책으로 만듦
차서借書-다른 사람에게서 책을 빌려 읽음
포서曝書-책을 햍볕에 쬐어 말려서 습기와 책벌레를 제거함

한마디로 책에 관한 모든 행동을 자신의 집에 이름으로 붙인 것이니, 이 정도면 책에 미쳤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가난했다. 자신이 아끼던 『맹자』를 처분하고 유득공과 더불어 서글퍼한 사연이 자주 인용되지만-하긴 같은 애서가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슬프고도 남을 일이긴 하다- 다음 사연을 보면 실감이 날 것이다.
한번은 이덕무가 빚쟁이에게 고발을 당했다. 당장 구속되게 생겼는데, 이덕무는 서얼이었지만 신분은 사대부여서 역모죄나 살인죄가 아닌 한 구속할 수 없었다. 이럴 경우에는 차지수금次知囚禁이라고 해서 사대부 대신 종을 가두는데, 이 제도를 적용해 그의 여종이 감옥에 들어갔다. 이덕무의 사정을 들은 서상수가 그에게 명 초에 만들어진 고급 화로를 빌려주었다. 이덕무는 이 화로를 전당포에 저당으로 1천 전錢을 빌리려고 했지만 흥정에 실패했다.
(* 참고로 100문=10전=1냥. 1,000전을 빌리려고 한 걸 보니 빚이 이 정도였던 모양인데, 이를 환산하면 100냥이 된다. 조선시대에 쌀 한 가마에 5냥이라는 걸 감안하면 고발이 들어올 법한 액수라는 생각이 든다.-_-;)
이덕무는 시를 지어 웅얼거리는 심정을 달랬다.

徐君假我坎離爐 서군이 나에게 감리로를 빌려 주었으나
富室千錢未肯輸 돈놀이 하는 사람 천 전을 주려 하지 않네
仄想歐邏西國俗 얼핏 생각하건대 서쪽 유럽의 풍속은
百金許典一根鬚 수염 한가닥 잡고서 백금도 준다고 하던데
(『청장관전서』 9권 《아정유고》 권1)

생활이 이 모양이니 제대로 인쇄된 책을 사서 보는 것은 아무리 돈을 아끼고 아껴 책에 쓴다 해도 무리. 그래서 이덕무가 선택한 방법이 책을 필사해서 소장하는 것이었다. 이덕무가 이서구李書九(1754~1825)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전에 용서傭書하는 사람을 보고 나는 그가 너무 부지런하다고 비웃었는데, 이제 문득 나도 그를 답습하여 눈이 어둡고 손이 부르트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 참으로 사람은 자신을 요량하지 못하는 것이오. 『유계외전留溪外傳』 첫 권을 보내니 저녁에 한 번 읽어 보고 내일 이른 아침에는 돌려 주오. 이는 모두가 효자孝子·충신忠臣·열처烈妻· 기부畸夫에 관한 것인데 세도世道에 보탬이 되는 책이오. 매양 갑신년(1644년. 명이 멸망한 해) 대목을 읽을 때에는 눈물이 어리고 뼈가 아프며 간담이 서늘하오.
(『아정유고』 권6 「이서구[李洛瑞]에게 주는 편지들」)

여기서 용傭은 품팔이하다 뜻의 한자인데, 용서傭書는 사례를 받고 책을 베껴써서 주는 것이다. 책이 워낙 귀하다 보니 베껴서라도 간직해 두지 않으면 다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필사를 자신이 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힘이 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어 베껴오게 하는 것이다. 이덕무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이 일로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이 많은 걸로 봐서 이덕무도 이 일을 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필사는 시간과 노동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때 자기 것까지 만들려면 작업량은 2배가 된다. 하지만 이덕무는 이 일을 꾸준히 하며 자신의 장서량을 늘렸다. 다행인 점은 생활에 여유가 있었던 이서구가 그에게 계속 빈 공책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덕무는 여기에 중요한 책을 베껴적어 이서구에게 주기도 했다.

『일지록日知錄』을 3년 동안이나 고심하면서 구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남이 비장祕藏해 둔 것을 얻어 읽어봤소. 육예六藝의 글·백왕百王의 제도 및 당세의 사무를 근거를 살펴 분명하게 분석하였소. 아아! 고영인顧寧人(고염무顧炎武)은 참으로 옛날의 기풍이 있는 큰 선비요. 돌아보건대, 지금 세상에 그대가 아니면 누가 이 글을 읽을 것이며 내가 아니면 누가 다시 이를 베껴쓰겠소. 4책을 우선 보내니 잘 간수하여 보기 바라오. 전에 보내 준 작은 공책은 아미 다 썼으니 계속 보내 주어 내가 이 책을 베껴 쓸 수 있도록 해주길 바라오.
(『아정유고』 권6 「이서구[李洛瑞]에게 주는 편지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서구의 초상. 이서구는 생활이 변변치 않았던 이덕무에게 꾸준히 빈 공책을 마련해 주었고, 이덕무는 여기에 베껴쓴 책을 종종 이서구에게 주었다. 이서구는 백탑파로 불리는 인물들 중에서 가문과 가정환경이 제일 유복한 인물이었고, 나중에 정승까지 역임했다.

나중에 이덕무의 아들 이광규는 이렇게 회고했다.

한 권의 책을 얻으면 반드시 보고 또 베껴 써서 잠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섭렵한 책이 수만 권이 넘고 베껴 쓴 책도 거의 수백 권이 된다. 여행을 할 때도 반드시 수중에 책을 휴대하고, 심지어는 종이·벼루·붓·먹까지 싸가지고 다녔다. 주막이나 배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으며, 기이한 말이나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듣는 즉시 기록하였다.
(『아정유고』 권8 「선고부군유사先考府君遺事」)

오늘날에는 책을 구하기가 예전보다 쉽게 되었다. 비록 도서정가제라는 되도않는 법이 책값을 다 망쳐놓았지만 책의 가격이 많이 싸졌고, 복사기술이 좋아져서 비싸고 구하기 힘든 책도 제본을 맡기면 깔끔한 형태로 얻을 수 있다. 대신 예전에 비해 책을 소중히 다루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빌린 책에 밑줄, 낙서하는 모습은 하도 많이 봐서 이젠 놀랍지도 않다. 심한 경우 페이지를 뜯거나 잘라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서구더러 "송준길의 중후함을 본받았으면 좋겠소. 하물며 내가 못된 소년처럼 책을 밟고 문지르지 않음에야?"라고 했던 이덕무가 이런 풍경을 보면 뭐라고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 송준길은 빌려준 책에 보풀이 일거나 손때가 묻지 않으면 책 열심히 안 읽었다고 책망하면서 다시 빌려줬다. 이에 어떤 못된 소년이 책을 빌려다가 읽지 않고 돌려주면서, 꾸중을 피하기 위해 책을 밟고 문질러 많이 읽은 것처럼 꾸몄다고 한다)


덧글

  • 위장효과 2016/01/23 09:27 #

    이덕무 가난한 건 정조조차도 잘 알고 있었는지라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시켜줬고, 그 소식 들은 박지원은 "드디어 그 친구들이 굶어죽지 않게 됐구나. 어떻게 사람이 물만 먹고 살 수 있겠냐?"라고 한마디 할정도였죠. 그리고 이덕무 죽은 다음에 정조가 자신의 사비-왕실내탕금?-털어서는 "이걸로 이덕무 문집 만들어줘라. 그 살림으로 문집은 꿈이나 꾸겠냐?"라며 내줬기도 했고.

    이덕무 본인이 책벌레라고 지칭할 정도로 책이라면 그저 좋아했으니 뭐.
  • 연성재거사 2016/01/23 18:57 #

    사실 조선시대 종이값이 상당했다는 걸 감안하면, 이덕무가 책에 대한 욕심을 조금만 덜 냈더라면 저렇게까지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
  • 시원한인생 2016/01/23 10:55 #

    확실히 옛날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더 대단합니다. 책을 통째로 베껴쓰는 것, 그 내용을 다 외우는 것은 저로서는 도무지 못할 것 같은데...
  • 연성재거사 2016/01/23 18:58 #

    뭐 작정하고 하면 할 법도 하긴 한데, 시간과 노력을 엄청나게 투자해야 하긴 합니다.(...)
  • JOSH 2016/01/23 10:57 #

    오늘의 교훈, 돈 많고 잘 나가는 동생(후배)과 친해라...
  • 연성재거사 2016/01/23 18:58 #

    오오, 그것은 진리......(퍽)
  • 解明 2016/01/23 16:33 #

    잘 읽었습니다. ^-^
  • 연성재거사 2016/01/23 18:57 #

    감사합니다. ^^
  • 대한제국 시위대 2016/01/23 21:22 #

    태백산맥을 쓴 작가 조정래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필사시킨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저작권이 조정래 보인 사후에도 수십년간 유지되니 돈을 받아먹는 자손의 입장(...)에서 창작의 고통을 느껴봐라...라고 시켰는데.

    요즘 책 한권 필사하라고 하면... 책 한권 읽기도 힘들지만 말이죠. 책 읽을 시간도 없고.
    저는 뭐 시간을 내서 읽긴하지만...
  • 연성재거사 2016/01/23 21:43 #

    일단 시간과 노동이 많이 투입되는 작업이긴 합니다. 한 번 조선시대사 강의에서 한문을 익히라고 교수님이 수시로 필사 과제를 내 주셨는데, 효과는 있었지만 과제가 나오면 그날은 헬게이트 오픈이었습니다.(...)
  • 남중생 2016/01/24 14:07 #

    이덕무가 시에서 노래한 "수염 한 가닥 잡고서 백금을 준다"는 풍속은 무엇을 말한 것일까요? 러시아의 수염세(稅)가 연상되긴 합니다만...
  • 연성재거사 2016/01/24 21:15 #

    수염세가 가능성이 높긴 한데, 그닥 신경을 안써서 잘 모르겠습니다. 크게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 아빠늑대 2016/01/25 11:54 #

    예전에는 눈으로 읽다가 요즘에는 써야 외워지는데 필사를 하게되면 확실하게 머리속에 쏙쏙 들어가지 싶습니다 ^^

    ........ 가난한건 논외.....;
  • 연성재거사 2016/01/25 19:28 #

    확실히 손으로 쓰는 것이 암기에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다만 시간과 노력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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