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과 그리움이 담긴 최치원의 서정시 by 연성재거사

서기 10세기 무렵, 당항포의 한 포구.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마침 이곳을 서성이고 있던 한 나그네도 그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중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듯 했지만, 그의 발은 선착장을 향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때, 떠나기 위해 모여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한 귀인이 나그네를 알아보고 나오더니 인사했다. 나그네도 그를 보고서 놀랐다. 귀인은 누구이고, 저 나그네는 누구이길래 서로를 알고 대했던 것일까?

나그네의 정체는 바로 최치원崔致遠(857~?). 12세에 당으로 유학을 가 18세에 과거에 급제해서 관리가 된 당대의 천재였다. 당나라 시기 과거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엄청난 것인게, 시험의 난이도가 있기 때문에 공부한 것도 중요하지만 가문배경과 후원자-쉽게 말해 "빽"이 있지 않고서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힘들다. 당송시기를 통틀어 손꼽히는 문장가인 한유韓愈(768~824)도 최치원(18세)보다 급제가 늦었는데(25세에 진사과 급제), 가문배경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과거시험을 아무런 배경도 없는 외국인 유학생이 초고속으로 통과한 것이다. 이런 그의 문장력은 당에서도 인정되어 최치원의 시문집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은 『신당서』 《예문지》에 수록되었다.
하지만 당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황소의 난으로 당의 재정적 버팀목이자 목숨줄이었던 강남지역이 난장판이 되면서 당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때 종사관으로 참전하기도 했던 최치원은 당의 관직을 포기하고 885년 귀국했다.
* 안사의 난 이후 당의 체제는 "절도사vs중앙정부" 구도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다. 그나마 중앙정부가 불안정하게나마 절도사들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 절도사들은 중앙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자신의 군대를 유지했고, 중앙정부는 절도사들을 통제할 돈줄을 강남지방의 부로 채웠기 때문에 불안정한 체제 속에서도 당이 존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황소의 난으로 인해 강남지역이 난장판이 되면서 당을 지탱해주던 부가 사라져버리게 되었고, 당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라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당보다 더 환경이 안 좋았다. 골품제는 이미 최악의 형태로 굳어져서 운영되고 있었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공이 있어도 모든 것을 결정해주는 것은 혈연이었다. 혈연이 받쳐주지 않으면 능력이 있어도, 공이 있어도 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런 골품제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그때는 모두가 힘들었고 높은 진골들도 열심히 싸웠다. 왕의 외삼촌인 김유신이 앞장서서 고구려에서 고립된 당군에게 군량을 전하는 위험한 임무를 자청했고, 관창같은 높은 귀족집 도련님도 임전무퇴를 외치며 적진으로 돌격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것도 없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889년에 있었다. 889년, 상주에서 원종과 애노의 난이 일어난다. 군사 요충지에서 일어난 반란에 신라 조정은 나마奈麻 영기令奇를 사령관으로 한 토벌군을 파견했다. 그런데 영기는 적의 보루를 보고는 진격하지 못했고, 중앙군이 머뭇거리자 촌주村主 우련祐連이 나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보고를 받은 진성여왕은 영기를 처형하고 우련의 아들로 촌주를 세습하게 했다.
영기가 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을 보면 귀족계열일텐데, 그의 관등은 17관등 중 11번째인 나마이다. 전과 달리 귀족들은 전쟁터에 코빼기도 안 비치고, 기껏 내보내도 별볼일 없는 귀족이 나온다. 그렇게 나온 사람도 제대로 싸우질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 진골도 싸우지 않는 전쟁을 촌주인 우련이 싸워서 해결했는데, 신라 조정에서 보상한 것은 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촌주직을 이어받게 한 게 전부이다. 하지만 우련이 전사하지 않았어도 그의 아들은 우련의 뒤를 이어 촌주직을 이어받을 확률이 높았다. 목숨바쳐 공을 세워도 신분의 벽을 넘을 수가 없는 사회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최치원도 바로 이 벽에 부딫쳤다. 좌절에 빠진 최치원은 관직을 버리고 유랑하기 시작했다. 유랑생활 도중 그의 발은 당항포에 닿았다. 신라에 머물기에는 희망이 없고, 그렇다고 중국으로 떠날 수도 없어 갈등하던 그의 앞에 아는 사람이 나온 것이다.
최치원과 인사를 나눈 귀인은 악관樂官이었다. 중국 출신인 그는 신라 조정에 스카웃되었다. 하지만 진성여왕 사후 그는 중국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신라의 정세가 불안해지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최치원처럼 국내파 진골들에게 미움을 받았을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당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당항성에 왔다가 최치원과 만난 것이다.
그날 밤,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나서 악관은 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두어곡을 마친 후 악관은 비통하게 울기 시작했다. 자신을 알아주던 후원자(진성여왕)에 대한 그리움과, 신라와 당에서 오갈 곳이 없어진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애의 감정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악관과 같은 처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최치원은 악관에게 시를 지어 주었다. 제목은 좀 길지만 시의 사연을 그대로 말해준다. 

당항성[唐城]에 나그네로 놀러가니 선왕先王 때 악관이 서西로 돌아가려고 하면서 밤에 두어곡을 불며 선왕의 은혜를 그리워하며 슬피울기에 시詩를 지어주다[旅遊唐城, 有先王樂官, 將西歸, 夜吹數曲, 戀恩悲泣, 以詩贈之]

人事盛還衰 인간 세상사가 성했다가도 쇠퇴하니
浮生實可悲 덧없는 인생이 실로 서럽구나
誰知天上曲 누가 알았으랴. 천상의 곡을
來向海邊吹 이 해변에 와서 불 줄을
水殿看花處 물가의 궁궐[水殿. 안압지]에서 꽃을 보며
風欞對月時 서늘한 난간에서 달을 마주보고 불었건만
攀髯今已矣 선왕을 이제 뵈올 수 없으니
與爾淚雙垂 이 몸도 그대와 더불어 눈물을 줄줄 흘리네
(『동문선』 권9 《오언율시五言律詩》)

이때 악관이 누구인지, 중국으로 건너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최치원은 이 시를 지은 후 유랑생활 끝에 가족들을 데리고 해인사로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그가 언제 생을 마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자신의 시대를 슬퍼하다 생을 마감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최치원의 시를 얘기하면 종종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읊었다는 「비내리는 가을밤에[秋夜雨中]」라는 제목을 가진 오언절구의 시가 얘기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긴 제목을 가진 이 오언율시를 더 좋아한다. 세상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진 서로의 처지에 대한 동병상련과 자신들을 알아주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공감하며 우는 감정 속에서 시대의 아픔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새해 인사와 함께 러블리즈 케이의 짤로 마무리 ㄳ

덧글

  • asianote 2016/01/03 23:34 #

    한복이 매우 잘 어울리는군요. (보라는 글은 안보고 미인찬양이나 하고 있음)
  • 연성재거사 2016/01/04 15:07 #

    사실 막짤이 핵심입니다. (고만해 이 아저씨야!!!)
  • 화성거주민 2016/01/04 00:48 #

    배경을 알고보니 싯구에서 최치원의 한이 뭍어나는 느낌입니다. 뛰어난 재주를 타고 났으나 신분의 한계에 막힌 갑갑함도 그렇고, 치세에 살았으면 모르겠는데 격변하는 난세에 휩쓸려 끝내 은거한 삶도 그렇고 말이죠.
  • 연성재거사 2016/01/04 15:07 #

    배경을 알고 보면 마지막 구에서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이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 역사관심 2016/01/04 01:32 #

    정말 좋은 글이네요. 진짜 인재들이 초야에서 헤매면 망국은 수순이란 것을 잘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연성재거사 2016/01/04 15:07 #

    최소한의 책임의식이 사라지면서 골품제가 막장으로 가던 시기였으니.......
  • 위장효과 2016/01/04 12:01 #

    근데 그 악관의 장래도 참 암담한게, 가 봐야 5대10국의 막장이요 남아봐야 후삼국의 막장이니 참 답이 없네요. 그렇다고 발해로 가자니 발해도 곧 멸망크리요 일본가자니 배타고 가기가 겁나고...

    덧글: 이 분이 새해 첫 포스팅부터 이단행위를!!!!
  • 연성재거사 2016/01/04 15:08 #

    재능을 가지고도 세상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참........(...)....

    덧: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지요? ('ㅅ')
  • 산중암자 2016/01/04 19:52 #

    - 안타까움으로 눈물이 날듯 글을 읽으며 스크롤을 내리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혼자 실실 쪼개며 정줄놓은 1人...........(쿨럭..)
  • 연성재거사 2016/01/04 20:40 #

    왜요, 웃으면 복이 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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