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군사학軍事學

1597년 9월 15일,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은 휘하의 장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招集諸將, 約束曰 "兵法云 '必死則生, 必生則死' 又云 '一夫當逕, 足懼千夫' 今我之謂矣. 爾各諸將, 少有違令, 則卽當軍律, 小不可饒貸.' 再三嚴約.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난중일기』 정유년Ⅱ 9월 15일)

여기서 이순신이 말한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는 말은 이순신의 어록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많이 회자된다. 그런데 이 구절만 딱 떨어져서 회자되다 보니 원래 의도와는 달리 정신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향 혹은 노오오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순신은 이 말이 병법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이순신이 말한 병법은 『오자병법吳子兵法』이다. 해당 부분을 읽어보자.

吳子曰 "凡兵戰之場, 立屍之地. 必死則生, 幸生則死. 其善將者, 如坐漏船之中, 伏燒屋之下. 使智者不及謀, 勇者不及怒, 受敵可也. 故曰用兵之害, 猶豫最大. 三軍之災, 生於狐疑."
오자가 말했다. "전쟁터는 시신이 쌓여있는 곳입니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요행을 바라면 죽습니다. 훌륭한 장수는 물이 새어 들어오는 배에 앉아있고, 불타는 집안에 엎드려 있는 것처럼 (결사의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사람도 장수의 모략을 따라올 수 없고, 아무리 용감한 사람도 그의 분노를 따르지 못해 어떠한 적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자고로 용병에서 제일 나쁜 것은 주저하는 것입니다. 여우처럼 의심하는 것은 전군에 재앙을 초래하는 원인이 됩니다.
(『오자병법』《치병治兵》)

『오자병법』의 전체 부분을 보면 이 유명한 문장이 얼마나 오독되고 있는지 드러난다. 인간이 죽음을 각오하면 행동은 2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말 그대로 "죽건 살건 ㅆㅂ 그딴거 모르겠다!"는 식으로 감정과잉이 되거나, 절박한 상황에서 모든 상념을 잊고 냉정해지거나. 오자가 말한 "물이 새어 들어오는 배에 앉아있고, 불타는 집안에 엎드려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은 후자이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절박한 상황에서 현실에 집중하면 그만큼 살아남아 승리할 확률은 높아진다.
명량해전의 상황에 이를 대입해보면 이순신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조선 수군의 가장 큰 약점은 숫적 열세이다. 하지만 좁은 명량해협은 이 숫적우위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렸고, 일본군은 병력을 소모적으로 축차투입해야 했다. 게다가 명량해협의 물살로 인해 일본군은 아다케부네 대신 세키부네를 투입해야 했는데, 세키부네는 선체의 높이가 낮고 승선인원도 적어서 판옥선보다 전투력이 떨어진다. 이런 전투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으로 공격해야 하는데, 물살이 워낙 빨라서 조종이 되질 않으니 협력이 되질 않는다. 다시 말해, 이순신은 최대한 조선군이 이길 수 있도록 작전을 구상해 놓은 상태였다.
관건은 조선수군이 숫적 열세에 질리지 않고 대응하는 것. 그렇기에 이순신은 "바다를 덮는 적의 숫적우위에 질려서 요행을 바라지 말고, 생사를 초월해서 냉정하게 대처하라"는 취지에서 『오자병법』을 인용한 것이지, 단순히 정신력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했던 말이 아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신력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군대치고 승자가 된 경우는 별로 없다.

막짤은 남주로 마무리 ㄳ

덧글

  • 대한제국 시위대 2015/12/24 16:56 #

    이거.....ㄷㄷㄷ 죽고자 하면 살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것이라는 말이 신중하게 싸우라는 소리군요. ㄷㄷㄷ 갓순신 클라쓰. ㄷㄷㄷ

    덧. 상께서 가로되, 군관 연성재에게 한마디 하셨다.
    "죽고자 하면 하영을 얻을 것이오, 살고자 하면 보미와 만날 것이다."(응?)
  • 위장효과 2015/12/24 18:58 #

    덧. 정유년 모월 모일.

    날이 맑다. 간만에 승경도를 하였다. 군관 연성재가 아분홍 화첩을 빌려주겠다고 했는데 안 가져와서 연유를 물으니 만호 대시대가 가져가서 안 돌려주고 있다고 하였다. 대시대를 불러서 사실을 확인한 후 엎어놓고 장을 쳤다. 도대체 어디서 짬이 나서 여러 처자들을 섭렵할 수 있는지 해괴할 따름이다.
  • 연성재거사 2015/12/25 15:45 #

    지금 사람들이 저 발언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전형적인 단장취의니........-_-;

    덧: 닥치는 대로 밝히는 님께서 그런 소리를 하니 재미가 없지 말입니다. ('ㅅ')
  • 별바라기 2015/12/24 18:55 #

    작년에 미해군과 왕립해군의 특공을 소재로 포스팅한적이 있는데, 미해군과 왕립해군 역시 왕성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활약은 적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들 정도였지요.

    이들의 활약은 모 열도 군대의 개죽음을 빙자한 특공과 달리, 후방에 노출된 취약한 아군을 보호하기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이었고...

    PS)그렇게 해봤자 이단 혐의는 벗기기 힘듭니다 ㄳ
  • 산중암자 2015/12/24 22:33 #

    - 복무중에 교육담당하던 소대장왈 : "전투력이 비빔밥이라면 정신력은 밥이야. 비빔밥에서 밥이 가장 중요하고 맛있으면 일단 절반은 먹고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밥만 있으면 그건 비빔밥이 아니라 그냥 맨밥이 되거든"

    ....그리고 일주일동안 열심히 굴렀다는 추억이...
  • 연성재거사 2015/12/25 15:46 #

    정신력을 강조하는게 감정과잉이 되지 말라는 건데, 이걸 간파한 사람들이 의외로 없습니다. -_-;

    덧: 2단? 그게 뭔가요? (퍽)
  • 위장효과 2015/12/24 19:03 #

    일단 "상유십이척"부터가 보통 사람이 할 말이 아니죠. 치트공의 정신력 강조는 다른 정신력 강조나 요즘 노오오오력하고는 차원이 다른 듯 하여... "내가 필히 승리할 수 있게 마련해둘터이니 너희는 그저 최선을 다하거라"
    =>그리고 실제 대장선에서 나온 사상자 수가...(더 이상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저 말은 전장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됨 "네가 싸우다 죽겠느냐 아니면 군법에 죽겠느냐!!!"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면하겠느냐!"


    덧. 먼저 배교를 참회하십시오!!!!!!
  • 연성재거사 2015/12/25 15:44 #

    치트공이 괜히 치트공이 아니.......OTL

    덧: ......................ㅡㅅㅡ
  • fatman1000 2015/12/24 21:04 #

    - 객관적으로 잘 싸운다고 평가 받는 군대들을 보면 강한 정신력이 군대의 기본 아님? 이런 분위기이지요.
  • 연성재거사 2015/12/25 15:43 #

    ............-_-;
  • 로자노프 2015/12/24 21:09 #

    뭐 사실 명량의 경우 상대방과의 규모차이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순신 장군 자신도 어느정도 운에 맡기는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죠. 그런 점에서 닥치고 정신력만 강조하는 황군스러운 현 군 상층부는....
  • 연성재거사 2015/12/25 15:42 #

    일단 정훈교육은 제껴두고 군납부터 좀......(...)...
  • 홍차도둑 2015/12/25 00:26 #

    정신력도 정신력 나름이지...충무공 운운할 때마다 제 입장에선 "빙신소리하고있네" 라는 말밖에 못하죠.

    그러니 참회하세요
  • 연성재거사 2015/12/25 15:42 #

    그 정신력 강조하는 방향이 참.............ㅡㅡ;;;

    덧: 이분 또 시작이시다. ㅡㅅㅡ
  • 2015/12/27 18:4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12/27 20: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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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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