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전사록-(0) Prologue by 연성재거사

역사는 긴 시간동안 누적되어 온 인물들의 행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선 시대에 뛰어난 성취를 이룬 인물들은 후대의 롤모델이 되고, 지속적으로 회자되고 탐구의 대상이 된다. 역사가 통치자[治者]의 학문이라는 동양의 관념이나, 지적인 훈련을 위해 위인들의 행적을 조명하며 역사서를 읽으라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전쟁사를 보면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앞선 시대의 명장들은 그들의 영웅성으로 인해 뒷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회자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승리는 전쟁과 경쟁에서 승리를 얻기 위한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교재가 되어 준다. 비록 전쟁의 패턴은 계속 진화해서 과거의 전쟁과는 양상이 전혀 달라졌지만, 과거의 명장들의 전적戰績은 후대의 사관학도들에게 선망과 모방의 대상이 된다.
동서를 막론하고 이런 명장들은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의 행적을 통해, 때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글을 통해 후대 학도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중국 같은 경우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병학兵學이 등장해 자리잡게 되었고, 여기서 동양 군사학이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병학가들 중에서도 전쟁과 전략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어 본 손무孫武는 동양 군사학의 시조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럼 서양 군사학은 어떨까? 전쟁과 관련된 문헌 자체는 기록의 시작과 함께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호메로스(Ὅμηρος. BC 8세기?)의 『일리아스(Ἰλιάς)』도 엄밀한 의미에서 전쟁과 관련된 문헌이다. 『일리아스』가 문학적 묘사를 한 작품이라면, 헤로도토스(Ἡρόδοτος. c. 484~425 BC)의 『역사(Ἱστορίαι)』와 투퀴디데스(Θουκυδίδης. c. 460~c. 400 BC)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Ἱστορίαι)』가 전쟁의 구체적인 모습을 남겼고,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아이네아스(Αἰνείας ὁ Τακτικός. BC 4세기 무렵)가 도시 방어전에 대해서 심도있게 다룬 저술을 썼다. 하지만 이런 문헌들은 서양 전쟁사를 다룰 때 심도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들 저술은 중국의 병학과 비교했을 때 전쟁과 전술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체계성과 심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장에서 실제로 활약했던 명장들은 어떨까? 실제로 페르시아 전쟁에서 활약한 칼리마코스(Καλλίμαχος. ?~490 BC)나 밀티아데스(Μιλτιάδης. c. 550~489 BCE), 테미스토클레스(Θεμιστοκλῆς. c. 524~459 BC)를 비롯해 사선대형을 고안해 테베를 패자로 만든 에파미논다스(Ἐπαμεινώνδας. c. 418~362 BC) 같은 명장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사에 임팩트를 남길 정도의 행적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을 제치고, 엄청난 전적戰積을 남겨 세계사와 전쟁사 모두를 장식한 남긴 인물이 있다.

나 빼놓고 세계 전쟁사를 얘기할려고?

알렉산드로스(Ἀλέξανδρος) 3세(BC 356~BC 323). 우리가 흔히 알렉산드로스 대왕(Ἀλέξανδρος ὁ Μέγας. Alexander the Great)라고 하는 인물이 바로 그이다. 34세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짧은 시간동안 그때까지 그리스 세계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군사적 성취로 그리스 전역과 페르시아 제국을 석권하고 인도 북부까지 진출했다.
짧은 시간에 정복사업으로 엄청난 영토를 정복한 군사적 영광으로 인해 알렉산드로스는 제국을 건설한 정복자로 인식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정치적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원정에서 돌아온지 오래 지나지 않아 열병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부하들에 의해 마케도니아 제국은 분열했고,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그의 가족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나중에 로마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지역을 통합한 정치세력은 나오지 않았다.

그 자신과 그가 이룩한 제국은 단명했지만, 군사학과 전쟁사에서 그의 이름은 살아남았다. 이미 고대에 한니발(Hannibal Barca. BC 246~BC 183)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누구냐는 질문에 알렉산드로스를 꼽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더 나아가, 오늘날 생도들이 배우는 서양 고대전쟁사에서 첫번째로 심도있게 다루어지고 토론되는 인물이 알렉산드로스이다.
* Livius. 『Ab Urbe Condita』35. 14
그의 교훈은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넓은 영역을 장악했다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니발의 지적대로 알렉산드로스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알던 세계를 누비며 모든 적을 상대로 싸웠다. 그 과정에서 알렉산드로스가 동원한 병사는 10만도 되지 않는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위업을 이룩한 것에 대해 컴패니언 기병을 이끌고 앞장서서 돌격을 지휘한 알렉산드로스의 용맹이 많이 회자되지만 용기만 가지고는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더욱이 싸우는 방법이 다른 군대들-그리스군/페르시아군/인도군-을 상대로 승리만 거둘 수도 없다.
이 연재를 통해 내가 탐구하려는 것은 알렉산드로스의 전적戰積이 어떻게 세계전쟁사 교범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전쟁 수행과 관련된 주제들만 다루기 때문에 전사록戰史錄이라는 제목을 골랐다. 때문에,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이 지니는 정치적 통합의 의미나 동서문화 교류의 얘기는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언급하는 것을 빼곤 다루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 시작하려는 알렉산드로스와 관련된 연재는 현재 계속 쓰고 있는 『징비록』이나 이순신과 관련된 연재와는 다른 논조로 쓸 수 밖에 없다. 역사적 사건의 진짜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선 해당 사건이 기록된 사료가 쓰여진 언어를 알아야 하는데, 이 점에서 내 한계가 뚜렸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에 관한 기록은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두 언어에 관한 내 지식은 매우 짧다. 문자 해독능력과 간단한 단어를 조금 알고 명구名句 약간 외운 것 정도. 사전을 보지 않고서는 짧은 문장도 독해하기 힘들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한국어 번역이 없는 고전 문헌들은 영역본을 통해 접해왔다. 한계가 뚜렷한 천학비재淺學菲才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블로그에 올린 로마 사료는 영역본을 중역重譯한 것이고, 그리스어의 경우 한국어 번역판의 도움을 받아 사전 찾아가면서 인용한 것이다. 당장 알렉산드로스를 다룬 주요 사료 중 하나인 아르리아노스(Ἀρριανός. c. AD 86/89~146/160 이후)의 『알렉산드로스 원정기(Ἀλεξάνδρου ἀνάβασις)』도 Martin Hammond의 영역본(Oxford World's Classics. 2013)으로 읽었다)
따라서 다른 연재들과 달리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한다거나, 기존의 통설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내용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 나름대로 공부한 것을 올리는 것 정도의 수준에서 그칠 것이다. 난 군사교육을 받은 장교후보생도, 서양사를 집중적으로 교육받아온 사학도도 아니기에 내 글의 한계는 뚜렷할 것이다. 혹시라도 읽을 분들은 이런 부분들을 유념해 주시길 바란다.

덧글

  • 행인1 2015/06/07 21:15 #

    알렉산드로스는 정말 비범한 군사적 재능의 소유자였지요.(아버지에게 많은걸 물려받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 연성재거사 2015/06/07 21:32 #

    연재를 시도하는데, 다른 연재에 비하면 한계가 뚜렷할 것 같습니다.-_-;
  • 엘레시엘 2015/06/15 23:31 #

    그런데 이 양반 전기 읽다 보면 정말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서 이긴건지, 그냥 똘기 충만해서 개돌했는데 무능한 적과 하늘의 도움으로 이긴건지 도통 분간이 안되는 경우가 많더란 말이죠 -_-;;; 솔까말 서른셋에 열병걸려 죽기 전에 전사 안한게 천행...
  • 연성재거사 2015/06/16 15:53 #

    그런데 알렉산드로스 말고도 무모해 보이는 돌격이 다른 명장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용기와 지혜를 가진 자에게 행운이 함께 한다는 느낌을 준다고 할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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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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