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겸 방명록 by 연성재거사

子曰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論語』 《顔淵》)

새해를 맞아 방명록 및 공지판 새로 올립니다. 2015년 지나도 한동안 계속 상단에 위치할 겁니다.

1. 이곳 주인장이 덕후이기 때문에 덕후는 환영입니다. 저는 역덕 겸 핑덕이지만 취향을 존중하기 때문에 소덕, 카덕, 걸덕 등등 모두 환영입니다. 
단, 환덕을 필두로 한 사이비학문 덕후들은 조용히 다른 곳에 가서 노실 것을 권합니다. 

2. 로그인 후 댓글 가능 원칙 하에 악플 및 광고댓글은 절대엄금입니다. 이런 부류의 글들 중 정도가 심한 것들은 경고없이 삭제합니다. 이것이 주인장의 권력 우훗.

3. 허가없이 무단으로 글 퍼가는 행위는 하지 마십시오. 정 내용을 공유하실 거면 링크/핑백/트랙백으로 대신 하시고, 댓글로 제가 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본인이 핑덕인 만큼 본 블로그는 에이핑크(Apink)를 응원합니다 적당히 해 이 미친 놈아!

그중 최고는 막둥이 겸 여신님!!!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뱀발: 막짤 둘은 수시로 업뎃 가능. (??!)

연재하는 글들(변경 가능) by 연성재거사

제가 블로그 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개인적인 글쓰기이기 때문에 간혹 주제가 잡히면 연재글도 올리고 있습니다. 방명록 새로 올리는 김에 방문하는 분들 편의를 위해 모아 놓았습니다. 비록 연재글을 많이 쓰지는 않지만, 정리해 놓으면 원하는 주제로 골라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재 목록을 올립니다.

-임진전쟁(1592~1598) 당시 조선수군의 전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순신의 해전술을 중심으로 분석하려고 연재하는 글입니다. 아마 제일 업데이트가 뜸하게 올라가는 연재가 될 것 같습니다. -_-a

-『징비록』의 내용을 초고와 비교하면서 내용이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하고 해석을 달은 내용입니다. 처음에 연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꽤 여러편이 모여서 이 주제의 글이 많아져서 태그로 체계를 묶어버렸습니다. 참고로 "Book of Corrections"는 2002년 출간된 영역 『징비록』의 제목입니다. 
(영역본의 서지사항은 『Book of Corrections: Reflections on the National Crisi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1592-1598』 written by Song-Nyong Yu, translated by Byonghyon Choi. California University Press. 2002)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적戰積을 다루고, 그가 어떻게 세계 전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는지 다룬 포스팅입니다. 해당 언어로 원 사료를 읽지 못하는 제 자신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유념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위 여부에 논란이 있긴 합니다만, 당나라 측천무후 시기 내준신이 함정수사 메뉴얼-_-로 적은 『나직경』을 번역한 연재입니다. 진위 논란도 있고 텍스트 자체도 괴악합니다만, 세상의 악을 이야기하면 善이 무엇인지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순진한 생각에 시도한 결과입니다.


※ 이 글은 항상 방명록과 더불어 상단에 놓겠습니다. 제가 판단해서 내용 변동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반영할 것입니다.

<더 퍼시픽> 벙커장면 실제 회고 by 연성재거사

유진 슬레지의 회고록(일부) 이전에 썼던 글에서 트랙백

HBO 미니시리즈 <더 퍼시픽>을 통틀어 주인공 유진 슬레지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펠렐리우 전투에서 벙커를 놓고 벌이는 전투 장면이다. 적병을 죽이고서 가진 감정, 적군에 대한 무자비성을 보여주는 아군을 보는 눈빛 연기는 주인공의 심정을 시청자가 짐작하게 해주는 장면이다.

해당 장면의 뒷부분. 유튜브에서 해당 장면 대부분을 보여주는 괜찮은 영상을 못 찾아서 부분영상으로 대신함-_-;;;

유진 슬레지의 회고록 『With the Old Breed』을 보면, 해당 사건은 펠렐리우 전투의 일환으로 벌어진 엔게스부스 섬을 놓고 벌인 전투 도중 벌어진 사건이다. 영상에 해당하는 회고록의 실제 부분을 옮겨보였다. 영상이 보여줄 수 없는 대목이 상당하다. 언어의 한계로 인해 약간의 의역을 했음-_-;을 양해 바란다. 비속어들은 원문에서 검열하지 않은 관계로, X표시 없이 그대로 썼다.

좀 더 내륙으로 이동한 뒤, 우리는 내륙의 일본군 사격진지 옆에 박격포를 설치하고 중대와 마주하고 있는 적을 쏠 준비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K 중대의 2등 중사 W R. 사운더스에게 벙커 안에 적군이 있는지 아냐고 물었다. 벙커는 아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병사들 몇 명이 환기구를 통해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고 하며 안에 살아있는 적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스내푸와 나는 벙커에서 1.5m 떨어진 곳에 박격포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1번 박격포는 우리 왼쪽으로 4.6m 떨어진 곳에 있었다. R. V. 버긴 상병은 관찰하고 있던 조니 마멧 하사로부터 발포 명령을 받기 위해 무전지식 전화기를 연결하고 있었다.
나는 내 뒤의 사격진지에서 무언가를 들었다. 일본군들이 낮게,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쇠창살에 부딪친 금속에서 달가닥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내 카빈 소총을 붙잡고 외쳤다. “버긴 상병님, 쪽바리들이 사격진지 안에 있습니다.”
버긴이 “이런, 슬레지해머. 정신 못 차리고 있구나.”고 나를 놀리며 살펴보기 위해 왔을 때, 모든 병사들이 무기를 준비했다. 그는 내 바로 뒤에 있는 환기구를 들여다보았다. 환기구는 대략 15~20cm 되는 작은 크기로, 1.3cm 가량 떨어진 쇠창살로 가려져 있었다. 그가 본 것은 입에서 모든 일본군을 향한, 버긴의 멋진 텍사스 스타일의 욕지거리가 쏟아지게 했다. 버긴은 쇠창살 너머로 총부리를 찔러 넣어 재빨리 2발을 쏘고 소리 질렀다. “바로 얼굴을 맞혔어.”
사격진지 안에 있던 일본군은 크게 지껄이기 시작했다. 버긴은 구멍을 통해 총을 쏘면서 이를 갈며 일본군 개자식들을 욕했다.
박격포반의 모든 병사들은 버긴이 첫 번째 발포를 하자마자 사태에 대비했다. 그것은 입구 끝의 바깥에 내 왼쪽으로 수류탄을 내던지는 형태로 왔다. 그것은 내게 축구공처럼 크게 보였다. “수류탄이다!”라고 소리 지르며 나는 사격진지 입구를 보호하고 있는 모래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모래벽은 1.2m 가량의 높이로 입구를 정면과 측면에서 오는 사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L자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수류탄이 폭발했지만, 아무도 당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여러 발의 수류탄을 더 던졌지만, 우리가 바닥에 딱 붙어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사격진지 앞에서 기면서 사격창구 가까이 쭈그리고 있었고, 때문에 안에 있는 적군은 그들에게 총을 쏠 수 없었다. 존 레디퍼와 빈센트 산토스는 위로 뛰어올랐다. 상황이 고요해졌다.
나는 문에 가장 가까이 있었고, 버긴은 내게 외쳤다. “안에 뭐가 있는지 봐, 슬레지해머.”
질문 없이 명령에 따르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에, 나는 모래벽 위로 머리를 들어 벙커의 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거의 죽을 뻔 했다. 내게서 멀어야 1.8m 된 곳에 일본군 기관총 사수가 쭈그리고 있었다. 익숙한 버섯헬멧을 쓴 그의 그을리고 무표정한 얼굴에 눈동자가 검은 점처럼 박혔다. 경기관총의 총부리가 거대한 3번째 눈처럼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먼저 반응했다. 내 카빈 소총으로 사격자세를 갖출 틈도 없이, 나는 고개를 재빨리 푹 숙였고, 내 헬멧이 거의 벗겨질 뻔했다. 아주 짧은 시간 후에 적은 6~8발 가량을 더 쏘았다. 총알은 내 머리 바로 위를 지나 벽을 찢고 고랑을 만들면서 내게 모래를 끼얹었다. 총구에서 내는 발사소리에 귀가 울렸고, 심장이 목에 얹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나는 존나 죽을 뻔 했다! 그는 그 거리에서 딱 나를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생각이 공포에 질린 내 마음 속을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내 전우들이 거의 그들의 젊은 목숨을 잃었는지, 카빈 소총을 준비하지도 않은 채 일본군이 우글거리는 사격진지를 곧장 들여다보다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어찌되었건 내가 얼마나 적을 증오했는지 말이다. 많은 베테랑 해병대원들이 내가 방금 했던 것보다 덜한 실수로도 이미 펠렐리우에서 목숨을 잃었다.
버긴은 소리 지르며 내게 괜찮은지 물었다. 쉰 꽥 소리가 내가 할 수 있는 답의 전부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제정신이 들게 해 주었다. 나는 앞쪽에서 기다가 적의 기관총이 나를 다시 쏘기 전에 벙커 위로 올라갔다.
레디퍼가 외쳤다. “벙커 안의 적들이 자동화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내푸는 동의하지 않았고, 열띤 논쟁이 뒤따랐다. 레디퍼는 분명히 자동화기가 있으며, 거의 머리가 날아갈 뻔 했던 내가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스내푸는 단호했다. 내가 전투에서 많이 경험했던 것처럼, 이런 언쟁은 비현실적이었다. 우리 상황은 이랬다-12명의 해병은 몇 명의 일본군이 안에 있는지 모르는 잘 지어진 콘크리트 사격진지에 꼬리가 잡힌 데다 주변에 우군은 없는 곤경에 처했고, 둘 다 베테랑인 스내푸와 레디퍼는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버긴이 소리쳤다. “집어치워!” 그리고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레디퍼와 나는 벙커 위, 문 바로 위쪽에 엎드렸다. 우리는 일본군이 갇혀 있는 동안에 제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간 일본군은 나와서 단검과 총검으로 우리에게 달려들 것이었고, 그건 우리에게 즐거운 생각이 아니었다. 레디퍼와 나는 입구에 수류탄을 내려놓고 터지기 전에 물러서기 충분할 정도로 문에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예외 없이 수류탄이 터지기 전에 우리에게 되던졌다. 나는 딱 그렇게 할만한, 억누를 수 없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대면한 것이 전부였지만, 내 머리를 거의 날려버릴 뻔한 기관총 사수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가 순식간에 솟아났다. 공포가 진정되면서 차가운 살인적 분노와, 되갚아주겠다는 복수심에 불타는 열망으로 변했다.
레디퍼와 나는 조심조심 문 쪽을 내려다 엿보았다. 기관총 사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총검이 꽂힌 아리사카 소총 총신 3개가 보였다. 이 총검들은 내게 3m 길이는 되어보였다. 총을 든 일본군들은 신나게 지껄이고 있었는데, 듣자하니 뛰쳐나갈 요량이었다. 레디퍼가 재빨리 행동했다. 그는 카빈 소총의 총신을 잡고 총 끝으로 소총들을 찍어 눌렀다. 일본군들은 더욱 재잘거리며 무기를 사격진지 안으로 홱 집어넣었다.
우리 뒤에서 산토스가 덮개가 없는 환기통을 발견했다고 소리쳤다. 산토스는 그 안으로 수류탄을 던져 넣기 시작했다. 각각의 수류탄은 작은 쾅 소리와 함께 우리 아래 사격진지 안에서 폭발했다. 산토스가 자신의 수류탄을 다 쓰자, 레디퍼와 나는 우리가 가진 수류탄을 그에게 건네주고서 우리는 계속해서 문을 주시했다.
산토스가 수류탄 여러 발을 떨어뜨린 후, 우리는 서서 버긴을 비롯한 다른 병사들과 더불어 사격진지 안의 적이 살아있을 가능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때 사격진지 안쪽이 추가 보호를 위해 콘크리트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수류탄 2발이 사격진지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답이 나왔다. 버긴과 함께 있던 병사들에게는 다행히도, 수류탄은 뒤쪽으로 던져졌다. 산토스와 나는 경고를 외치며 사격진지 위쪽 모래바닥에 납작 엎드렸지만, 레디퍼는 단지 팔을 얼굴 위로 올렸을 뿐이었다. 그는 팔뚝에 파편 여러 발을 맞았지만 심하게 부상당하지는 않았다.
버긴이 소리쳤다. “제길, 여기서 벗어나서 이 빌어먹을 것을 처리하게 우릴 도울 탱크를 부르자.” 그는 우리에게 사격진지에서 36.5m 가량 떨어진 크레이터들로 후퇴하라고 명령했다. 우리는 화염방사기와 75mm 포를 장착한 수륙 양용 장갑차를 부르도록 심부름꾼을 해변으로 보냈다.
우리가 크레이터에 뛰어들자, 3명의 일본군 병사들이 사격진지에서 나와 모래벽을 지나 덤불 쪽으로 달려갔다. 각각 오른손에는 총검을 장착한 소총을 들고 왼손에는 자신의 바지를 들고 있었다. 이 행동에 너무 놀란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응시하면서 내 카빈 소총을 쏘지 않았다. 포격을 받는 것처럼 두렵지는 않았지만, 단지 잔뜩 흥분했던 것이었다. 내 동료들은 나보다 노련했고 총알세례로 적들을 죽였다. 내가 효율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대신 낯선 일본군의 습관을 궁금해 했던 것에 대해 나 자신을 자책하는 동안, 동료들은 서로 기뻐했다.
수륙양용장갑차가 이때까지 덜거덕 더리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확실히 반가운 광경이었다. 장갑차가 자리를 잡는 동안, 일본군 여러 명이 꽁꽁 무리지어 사격진지에서 달려 나왔다. 몇몇은 총검을 장착한 소총을 양손에 들고 있었지만, 다른 몇몇은 한 손에는 소총을 들고 다른 손에는 그들의 바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처음의 놀라움에서 벗어나 다른 병사들·장갑차 기관총 사수와 함께 일본군을 겨냥해서 마구 쏘았다. 일본군은 맨다리·떨어진 소총·구르는 철모가 헝클어진 몰골로 뜨거운 산호 위에 폭삭 넘어졌다. 우리는 동정심 없이 그들의 최후를 크게 기뻐했다. 우리가 그들을 몰아붙였을 때 연민을 가지기에는 너무 많은 총포 세례를 받았고, 너무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
수륙양용장갑차는 우리와 나란히 일렬로 자리를 잡았다. 탱크를 지휘하는 하사는 버긴과 상의했다. 그리고 회전포탑의 포수가 3발의 75mm 철갑탄을 사격진지의 측면에 발사했다. 대포소리와 함께 포탄이 표적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할 때마다 익숙한 쿵쾅 소리가 우리 귀에 울렸다. 3번째 포탄이 사격진지에 완전히 구멍을 내버렸다. 파편들이 다른 쪽에 놓여있던 우리의 버려진 짐들과 박격포 주위에 먼지를 일으켰다. 우리와 가까운 쪽에, 직경이 1.2m 가량 되는 구멍이 났다. 버긴은 우리 장비가 손상되지 않도록 탱크 조종수에게 사격을 멈추라고 외쳤다.
누군가 일본군이 파편 때문에 죽지 않았더라도, 충격 때문에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나는 일본군 병사가 폭발로 생긴 구멍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가 우리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려고 팔을 뒤로 젖히면서 그의 굳은 투지가 보였다.
내 소총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나는 내 총의 조준선을 그의 가슴에 놓고 총을 쏘기 시작했다. 첫 탄환이 그를 맞히자,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무릎의 힘이 풀렸다. 그가 움켜쥔 손에서 수류탄이 떨어졌다. 수륙양용 장갑차의 기관총 사수를 비롯해 내 근처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그를 보고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 병사는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쓰러졌고, 수류탄은 그의 발치에서 폭발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가운데에서도, 나는 진지한 생각과 함께 카빈 소총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방금 코앞의 사람을 죽였다. 나는 내가 쏜 총알에 맞은 순간 그의 얼굴에 나타난  고통을 똑똑히 보았고,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전쟁이 굉장히 개인적인 일로 변했다. 그 사람의 얼굴 표정 때문에 나는 수치, 전쟁과 전쟁이 만들어내는 고통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찼다.
여태까지 내 전투경험은, 적군에 대한 그런 감상이 바보의 감정적인 명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를 보라. 해병대 부대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우수하며, 억센 연대들 중 하나인 해병대 5연대 일원이, 내게 수류탄을 던지기 전에 빌어먹을 적을 쏘았다는 이유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있다!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고, 동료들이 내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구멍이 뚫린 곳으로 계속 쏘라는 버긴의 명령이 내 사색을 중단시켰다. 우리는 사격진지 안으로 계속해서 총을 쏘아, 미시시피 출신의 워맥 상병이 화염방사기를 가지고 올 때까지 일본군을 꼼짝 못하게 붙들었다. 그는 용감하고 성격이 좋아서 부대에서 인기 있었지만, 내가 봤던 해병들 중 가장 사납게 생긴 인물 중 하나였다. 큰 덩치에 굵은 목소리를 가졌고, 불타는 듯한 빨간 수염은 흰색 산호 먼지로 뒤덮여있었다. 그는 내게 사나운 바이킹족을 연상시켰다. 나는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것이 기뻤다.
탱크 앞에서 몸을 구부리고서, 워맥과 조수는 우리 사선 바로 밖에 있는 사격진지로 접근했다. 그들이 목표로부터 13.7m 가량 떨어졌을 때 우리는 사격을 멈추었다. 보조원이 따라붙어서 화염방사기의 밸브를 열었다. 워맥은 75mm 포가 낸 구멍에 노즐을 겨누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쉬이이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몇몇이 비명을 낮추더니 조용해졌다.
아무리 극기심이 강한 일본군이라도 불과 질식 때문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본군에게는 우리가 항복할 수 있는 상황에 닥쳤을 때 일본군에게 항복하지 않을 만큼이나 우리에게 항복할 가능성이 없었다. 일본군과 싸우는데 있어서 항복은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감탄하는 우리들의 외침 속에, 워맥과 그의 동료는 전장 어딘가의 교착상태를 깨기 위한 호출을 기다리기 위해 대대본부로 돌아갔거나, 애쓰다가 목숨을 잃었다. 화염방사기 사수의 일은 아마 해병대 보병들에게 제일 선호 받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동굴이나 사격진지 입구에 불길을 뿌리기 위해 적의 사격이 빗발치는 가운데 31.8kg 정도 되는 인화성 네이팜이 든 탱크를 지고 바위투성이 지형을 다니는 것은, 모두가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수행했지만 거의 살아남지 못하는 임무였다.
우리는 크레이터를 떠나 조심스럽게 사격진지로 접근했다. 버긴은 일부 병사들에게 쓰러진 일본군들 가운데 생존자가 없는지 확실히 살펴보고, 나머지 병사들은 그동안 엄호하도록 명령했다. 부상당한 일본군은 접근할 때마다 예외 없이 수류탄을 터뜨렸고, 가능하면 적군을 저승길 동무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일본군 모두가 죽었다. 화염방사기와 장갑차 덕분에 사격진지는 기능을 상실했다. 7명의 적군이 그 안에서 죽었고, 밖에서 10명이 죽었다. 우리 장구와 박격포는 장갑차의 75mm포에 경미한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12명의 해병대 박격포 대원 중 우리의 유일한 부상자는 수류탄 파편에 맞은 레디퍼와 레슬리 포터였다. 그들의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우리의 행운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적군이 기습으로 우리에게 달려들었다면, 우리는 엄청난 곤경에 빠졌을 것이다.

영상에서 해당파트를 각색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영상이 표현해 낼 수 없는, 저자의 심리에 관한 서술이 굉장히 탁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감상은 각자의 독자분들에게 맡기는 바이다.

막짤은 분위기 전환을 위한 케빵이 짤 조공으로 마무리 ㄳ

윌리엄 슬림 육군원수의 회고록에서 인상깊었던 대목 by 연성재거사

부제: 광복절 맞이 땜빵용 포스팅 하나

독립과 관련해서 우리의 독립유공자 무다구치 렌야의 무능이 회자되는데, 정작 상대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관심은 적다-_- 이때 일본군을 상대했던 영국군의 지휘관 중 한 명이 윌리엄 슬림 장군(William Joseph Slim, 1st Viscount Slim, KG, GCB, GCMG, GCVO, GBE, DSO, MC, KStJ. 1891~1970)이다. 1942년 3월 버마 군단 사령관에 임명되어 서전에 일본군에게 밀리던 영국군을 지휘했고, 나중에 14군 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임팔 작전에서 자멸하던 일본군을 격퇴한 인물이다. 전후에 육군원수로 진급했고, 제국장군참모장(Chief of Imperial General Staff. 약자로 CIGS. 한국으로 치면 육군참모총장과 비슷한 보직)을 역임했다.
나중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총독으로 재직할 당시 불미스런 추문(...)이 있는데다  한국에서 인지도는 별로 없지만, 동아시아 전선을 추스리고 반격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말년에 『패배에서 승리로(Defeat into Victory)』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남겼다. 대부분의 회고록들이 자뻑으로 유명한데 비해 자신을 겸손하게 서술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지는 회고록인데, 1권 「패배(Defeat)」편의 6장 <여파(Aftermath)> 말미에서 그는 이렇게 서술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라면, 나는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 거의 없다. 나는 내 전투 지휘를 높이 평가할 수 없다. 전투 지휘의 유일한 평가는 성공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의도했던 것들 중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몇번이고 나는 공세로 넘어가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고, 내가 꼭대기 층을 쌓을려고 시도할 때마다 내 엉성한 계획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일본군이, 그들의 대담한 계획을 방해없이 수행하도록 허락받는 한, 엄청난 상대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중략)......
준비, 시행, 전략, 전술에 있어서 우리는 실패했고,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다—패배한 것이다. 패배는 쓰라리다. 병사들에게도 쓰라리지만, 그의 장군에게는 몇배는 더 쓰라리다. 군인은 결과에 상관없이 그의 임무를 변함없이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생각으로도 위로가 된다. 하지만 지휘관은, 만약 그가 승리하지 못하면 임무에 실패한 것이다—승리가 그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지휘관에게는 그 임무와 견줄 수 없다. 지휘관은 전역에서 벌어진 일들을 마음속으로 검토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내가 실수했다. 여기서는 내가 과감해야 할 부분에서 겁을 먹었다. 저기서는 단편적으로 공격할 것이 아니라 힘을 모으며 기다려야 했다. 그 순간에는 기회가 있었지만 내가 잡는데 실패했다.’ 지휘관은 그가 공격에 보냈지만 실패하고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지휘관을 믿었던 병사들의 눈빛을 상기할 것이다. 그리고 혼잣말을 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실망시켰고, 조국을 실망시켰다!’ 그는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보게 될 것이다-패배한 장군이다. 암울한 시기에 지휘관은 자기 자신을 향해 스스로의 통솔력과 남자다움의 기초 자체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지휘관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 만약 다시 전투에서 지휘를 맡게 된다면, 그는 이런 후회들을 떨쳐내고 짓밟아야 한다. 이런 후회들이 지휘관의 의지와 자신감을 할퀴기 때문이다. 지휘관은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이런 공격들을 물리치고, 실패에서 기인하는 의심을 쫓아내야 한다. 실패는 잊어버리고, 패배에서 배운 교훈을 기억해라—그 교훈은 승리에서 배우는 교훈보다 값지다.
(William Slim, 1956, Defeat into Victory, Cassell, p.120~121)

글 자체가 명문이지만, 무엇보다도 "본인의 작전은 완벽했지만 멍청한 부하들 때문에 실패했스무니다!"라고 우겨댄 비공식 국가독립유공자이신 상대와 참 대비되었다.ㅋㅋㅋㅋㅋ


막짤은 오랜만에 케빵이로 마무리 ㄳ

역사적 사실 by 연성재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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