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겸 방명록 by 연성재거사

子曰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論語』 《顔淵》)

새해를 맞아 방명록 및 공지판 새로 올립니다. 2015년 지나도 한동안 계속 상단에 위치할 겁니다.

1. 이곳 주인장이 덕후이기 때문에 덕후는 환영입니다. 저는 역덕 겸 핑덕이지만 취향을 존중하기 때문에 소덕, 카덕, 걸덕 등등 모두 환영입니다. 
단, 환덕을 필두로 한 사이비학문 덕후들은 조용히 다른 곳에 가서 노실 것을 권합니다. 

2. 로그인 후 댓글 가능 원칙 하에 악플 및 광고댓글은 절대엄금입니다. 이런 부류의 글들 중 정도가 심한 것들은 경고없이 삭제합니다. 이것이 주인장의 권력 우훗.

3. 허가없이 무단으로 글 퍼가는 행위는 하지 마십시오. 정 내용을 공유하실 거면 링크/핑백/트랙백으로 대신 하시고, 댓글로 제가 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본인이 핑덕인 만큼 본 블로그는 에이핑크(Apink)를 응원합니다 적당히 해 이 미친 놈아!

그중 최고는 막둥이 겸 여신님!!!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뱀발: 막짤 둘은 수시로 업뎃 가능. (??!)

연재하는 글들(변경 가능) by 연성재거사

제가 블로그 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개인적인 글쓰기이기 때문에 간혹 주제가 잡히면 연재글도 올리고 있습니다. 방명록 새로 올리는 김에 방문하는 분들 편의를 위해 모아 놓았습니다. 비록 연재글을 많이 쓰지는 않지만, 정리해 놓으면 원하는 주제로 골라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재 목록을 올립니다.

-임진전쟁(1592~1598) 당시 조선수군의 전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순신의 해전술을 중심으로 분석하려고 연재하는 글입니다. 아마 제일 업데이트가 뜸하게 올라가는 연재가 될 것 같습니다. -_-a

-『징비록』의 내용을 초고와 비교하면서 내용이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하고 해석을 달은 내용입니다. 처음에 연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꽤 여러편이 모여서 이 주제의 글이 많아져서 태그로 체계를 묶어버렸습니다. 참고로 "Book of Corrections"는 2002년 출간된 영역 『징비록』의 제목입니다. 
(영역본의 서지사항은 『Book of Corrections: Reflections on the National Crisi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1592-1598』 written by Song-Nyong Yu, translated by Byonghyon Choi. California University Press. 2002)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적戰積을 다루고, 그가 어떻게 세계 전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는지 다룬 포스팅입니다. 해당 언어로 원 사료를 읽지 못하는 제 자신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유념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위 여부에 논란이 있긴 합니다만, 당나라 측천무후 시기 내준신이 함정수사 메뉴얼-_-로 적은 『나직경』을 번역한 연재입니다. 진위 논란도 있고 텍스트 자체도 괴악합니다만, 세상의 악을 이야기하면 善이 무엇인지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순진한 생각에 시도한 결과입니다.


※ 이 글은 항상 방명록과 더불어 상단에 놓겠습니다. 제가 판단해서 내용 변동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반영할 것입니다.

『With the Old Breed』 번역본 문제점(2) by 연성재거사

지난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핵심적인 부분만 지적하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이미지가 조금 많은데, 덕질의 포텐이 터져서가 아니라 일본어 번역본을 제시하느라 그렇습니다.

3. 필요이상으로 옮겨댄 일본어 번역

잊을만 하면 벌어지는 국내 번역서의 고질적인 몹쓸짓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벌어졌습니다. "원문은 이게 아닌데?" 싶어서 보면 일어판에서 쓰는 표현을 빌린 것들이 많습니다.

먼저, 목차 번역에서부터 이런 정황이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1장 해병대원의 탄생
2장 전투 준비
3장 가자, 펠렐리우섬으로
4장 지옥으로 진격하다
5장 또 한 번의 상륙 작전
6장 용감한 병사들 스러져 가다
7장 휴식과 충전
8장 진격의 서막
9장 집행 유예
10장 바닥이 없는 구렁텅이 속으로
11장 불안과 공포
12장 진흙과 구더기
13장 돌파구
14장 슈리 고지를 너머
15장 고통은 끝나고

1. Making of a Marine
2. Preparation for Combat
3. On to Peleliu
4. Assault into Hell
5. Another Amphibious Assault
6. Brave Men Lost
7. Rest and Rehabilitation
8. Prelude to Invasion
9. Stay of Execution
10. Into the Abyss
11. Of Shock and Shells
12. Of Mud and Maggots
13. Breakthrough
14. Beyond Shuri
15. End of the Agony


1장과 15장은 한국어 표현으로 좀 더 적절하다 싶은 것이 있을텐데? 하는 용어들이고, 11장은 뭔 소리를 써 놓은 건지 싶을 정도로 단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일어판을 보겠습니다.


마크한 부분의 일어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이 보이시죠? 특히 11장은 고민하다가 일어판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목차만 이런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도 이런 것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앞부분에서 저자가 해병대에 지원할 때 징병 병장이 신체적 특징을 묻습니다. 다리의 2.5cm가량의 흉터를 말하고서 이런 질문을 물어본 이유를 물어보자, 이렇게 답합니다.

자네가 태평양의 어느 해변에서 일본군의 포탄을 맞고 쓰러졌다고 쳐. 그런데 마침 인식표도 자네 머리와 함께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없어졌어. 자네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자네 무릎에 난 흉터......이것을 보고 전사한 그 병사가 자네인 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거야.(40쪽)

So they can identify you on some Pacific beach after the Japs blast off you dog tags.(p.5)

원문의 어조도 순화되었을 뿐더러, 없는 설명이 잔뜩 붙어있습니다. 일어판을 보죠.


아예 일어판을 그대로 갖다붙였습니다. "그래야 쪽X리가 군번줄을 날려버려도 태평양 해변에서 자네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라고 번역하면 어디 안됩니까?
그 다음, 펠렐리우 전투에서 일본군의 전술이 바뀐 것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군은 상륙하는 우리 병력을 총력을 기울여서 해변에서 저지하려고 했던 기존의 전술을 버렸다. 그들은 중앙 고지를 중심으로 섬 깊숙한 곳에서 동굴과 터널을 파고 견고한 방어 진지를 구축한 다음, 각각의 진지들이 서로 지원하는 복잡한 방어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121쪽)

The Japanese abandoned their conventional all-out effort at defending the beach in favor of a complex defense based upon mutually supporting, fortified positions in caves and pillboxes extending deeply into the interior of the island, particularly in the ridges of Umurbrogol Mountain.(p.61)

원문에 있던 우무르브로골 산이라는 지명이 사라졌습니다. 지형적으로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무슨 배짱을 가지고 이럴 수 있었는지 싶었는데, 일어판을 보니 대번에 질문이 사라지더군요.


역시나 일어판 번역 옮겼습니다. 그러면서 아예 어려운 지명은 지웠군요.-_-;;;

문제는 이러다보니 원문의 섬세한 표현이 두드러지는 부분까지도 망가뜨려 놓았습니다. 펠렐리우 섬에서 저자가 포격의 트라우마를 서술한 부분을 보면 이렇습니다.

집중포화를 받고 있을 때나 장시간에 걸쳐 적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단 한 발의 포탄 폭발도 몸과 마음에 엄청나게 큰 충격을 입힌다. 나에게 대포는 지옥의 발명품이었다. 파괴의 혼이 담긴 거대한 강철 덩어리가 예리한 쇳소리를 내면서 사정없이 날아와 표적을 파괴한다. 이것보다 더 흉포한 무기는 없다.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함의 화신이 바로 대포이다. 대포는 폭력의 가장 지독한 물건이며 인간이 인간을 향해 저지르는 비인간적이고 잔학한 폭력의 정수이다. 내 안에서는 대포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이 생겨났다. 총탄을 맞고 죽는 것은 어떻게 보면 깔끔하다. 그러나 포탄은 사람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미쳐 버리기 직전까지, 아니 그런 범위를 넘어서면서까지 고문한다. 포탄이 한 발씩 날아와 터질 때마다 나는 온 몸의 힘이 빠져 무력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147~148쪽)

To be under a barrage of prolonged shelling simply magnified all the terrible physical and emotional effects of one shell. To me, artillery was an invention of hell. The onrushing whistle and scream of the big steel package of destruction was the pinnacle of violent fury and the embodiment of pent-up evil. It was the essence of violence and of man's inhumanity to man. I developed a passionate hatred for shells. To be killed by a bullet seemed so clean and surgical. But shells would not only tear and rip the body, they tortured one's mind almost beyond the brink of sanity. After each shell I was wrung out, limp and exhausted.(p.79)

원문의 표현은 굉장히 길면서도, 시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번역문을 보면 멋대로 자르고, 없는 문장이 들어가기까지 했습니다.


표시한 부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역시나 일본어 번역 거의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영어 원문을 붙들고 고민하기가 그렇게도 귀찮았는지요?

하나 더, 1945년 새해 첫날, 파부부에서 휴식을 하며 재정비하던 해병들은 파티를 벌입니다. 이 때 저자가 속해있던 중대에서 하워드 니스라는 병사가 조리실에 있던 칠면조를 서리해서 구운 뒤 다른 병사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가 보여준 친절함과 다정함은 저자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은 장면인데,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서 행동으로써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웅변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297쪽)

By his example, he taught me more than anyone else the value of cheerfulness in the face of adversity.(p.183)

원문에 보면 없는 '웅변적으로'라는 표현이 들어갔습니다. 우리 말에서 '웅변적으로'라는 표현은 우렁차고 당당하게 말해준다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것으로, 이런 상황에서 들어갈만한 표현은 아닙니다.


역시나 일본어 번역판에 있는 표현 차용한 거였습니다.-_-;;;;;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 번역본은

1. 한 사람이 작업한 것 같지도 않고, 검토도 정밀하지 못했다.
2. 어설픈 의역을 시도하면서 원문의 어조를 상당히 죽여버렸다.
3. 그 와중에 일어 번역을 필요 이상으로 참고하면서 다른 글을 만들어 놓았다.

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이제라도 번역이 된 건 기뻐해야 합니다만, 결과물에 대해서는 이렇게 밖에 할 말이 없네요. "이럴거면 하지 마!"

저런 X판 번역본 보지 마시고 귀여운 케부기 보세요 케부기 헤헤

『With the Old Breed』 번역본 문제점(1) by 연성재거사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병대 소속으로, 펠렐리우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던 유진 슬레지의 회고록 번역본이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링크] 개인적으로 단편적으로 번역한 부분을 올렸던 적도 있던 터이지만, 원서를 읽었던 입장이라 번역상태를 봤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이 출판사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질렀지?' 싶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습니다. 나름 광고도 열심히 뿌렸는데, 그 광고에 쓸 정성을 번역 검토에 들이지 그랬냐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사실 일일이 까기에는 저도 시간이 없고, 그걸 시시콜콜 다 따지면서 쓰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항목별로, 명확해 보이는 것만 짚겠습니다.

1. 한 사람이 작업한 것 같지도 않고, 검토도 정밀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미묘한 단어를 어떻게 번역했나 보면 나옵니다. 이 책에서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Old Breed입니다. 문구를 직역하면 고참병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저자가 소속되어 있던 미 해병1사단의 별칭이기도 합니다. 서론의 주석에도 언급이 있긴 합니다.(23쪽)
그런데 이 단어 번역부터 오락가락 거립니다. 책을 여는 머릿말로, 저자는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제5해병연대 제3대대 K중대 중대장이었던
앤드루 홀데인 대위를 기리며,
지옥을 함께했던 전우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In memory of Capt. Andrew A. Haldane,
beloved company commander of K/3/5,
and to the Old Breed

일단 "beloved 어디로 갔냐?"를 묻기 전에 Old Breed를 보시죠. 두 단어 모두 대문자로 첫글자를 썼습니다. 명백한 명사형이고, 때문에 여기서는 해병 1사단이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서론에서 멀쩡하게 써 놓고, 제일 중요한 머릿말에서 이렇게 멋대로 옮겨놓았습니다.
또 하나, 헤이니 중사를 이야기한 부분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역전의 고참병들>과 직접적인 연결점이 되어 주었다. 우리에게 그는 고참병이었다. 우리는 그를 존경했다. 그리고 사랑했다.(98쪽)

He provided us with a direct link to the “Old Corps.” To us he was the old breed. We admired him—and we loved him.(p.45)

여기서 Old Corps는 해병1사단 소속 5연대를 지칭하는 말합니다. (직역하면 "고참 부대" 정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단어를, 앞에서는 <고참 해병대>(84쪽)라고 해 놓았습니다. 분명히 5연대를 지칭하는 동일한 용어인데, 전혀 다르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작업한 것이 아니며, 검토작업도 정밀하지 못했다는 의심이 과연 근거가 없는 것인지요?

2. 어설픈 의역

사실,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직역"만으로 모든 번역이 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어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의역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의역을 정말 이상하게 해 놓았습니다. 교양있는 한국어를 만들려는 시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원문의 어감과 현실감을 다 죽여놓았습니다.
가령, 펠렐리우에서 수륙양용차에 실린 보급품을 내리던 도중 포격이 날아오자 운전병이 불평합니다. 이 때 부사관이 이렇게 답합니다.

「미안해 친구, 그렇지만 이 암트랙에서 보급품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가 죽어난단 말이야!」(169쪽)

“I'm sorry, ole buddy, but if we don't get these supplies unloaded, it's our ass!”(p.95)

번역 자체는 크게 틀리질 않습니다만, 맨 마지막 문장에서 문장을 순화하면서 어감을 다 죽여놓았습니다. 좀 센스있게 옮기면 "우리가 ㅈ되거든!"이 될텐데 말이죠. 덕분에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아주 교양있게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Nips나 Japs, 영어에서 둘 다 일본인을 지칭하는 비속어입니다. 한국어로 치면 쪽발이/쪽바리 정도 되는 단어인데, 이게 줄줄이 "일본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상대로 정말 절제되게 말을 하고 있죠?

일단 1부는 여기까지. 앞으로 2부까지만 쓸겁니다. 차근차근 따지면 끝이 없거든요.(녹차)

막짤은 기분 전환용 하빵이 여신님으로 마무리 ㄳ

<더 퍼시픽> 벙커장면 실제 회고 by 연성재거사

유진 슬레지의 회고록(일부) 이전에 썼던 글에서 트랙백

HBO 미니시리즈 <더 퍼시픽>을 통틀어 주인공 유진 슬레지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펠렐리우 전투에서 벙커를 놓고 벌이는 전투 장면이다. 적병을 죽이고서 가진 감정, 적군에 대한 무자비성을 보여주는 아군을 보는 눈빛 연기는 주인공의 심정을 시청자가 짐작하게 해주는 장면이다.

해당 장면의 뒷부분. 유튜브에서 해당 장면 대부분을 보여주는 괜찮은 영상을 못 찾아서 부분영상으로 대신함-_-;;;

유진 슬레지의 회고록 『With the Old Breed』을 보면, 해당 사건은 펠렐리우 전투의 일환으로 벌어진 네게스부스 섬을 놓고 벌인 전투 도중 벌어진 사건이다. 영상에 해당하는 회고록의 실제 부분을 옮겨보였다. 영상이 보여줄 수 없는 대목이 상당하다. 언어의 한계로 인해 약간의 의역을 했음-_-;을 양해 바란다. 비속어들은 원문에서 검열하지 않은 관계로, X표시 없이 그대로 썼다.

좀 더 내륙으로 이동한 뒤, 우리는 내륙의 일본군 사격진지 옆에 박격포를 설치하고 중대와 마주하고 있는 적을 쏠 준비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K 중대의 2등 중사 W R. 사운더스에게 벙커 안에 적군이 있는지 아냐고 물었다. 벙커는 아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병사들 몇 명이 환기구를 통해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고 하며 안에 살아있는 적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스내푸와 나는 벙커에서 1.5m 떨어진 곳에 박격포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1번 박격포는 우리 왼쪽으로 4.6m 떨어진 곳에 있었다. R. V. 버긴 상병은 관찰하고 있던 조니 마멧 하사로부터 발포 명령을 받기 위해 무전지식 전화기를 연결하고 있었다.
나는 내 뒤의 사격진지에서 무언가를 들었다. 일본군들이 낮게,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쇠창살에 부딪친 금속에서 달가닥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내 카빈 소총을 붙잡고 외쳤다. “버긴 상병님, 쪽바리들이 사격진지 안에 있습니다.”
버긴이 “이런, 슬레지해머. 정신 못 차리고 있구나.”고 나를 놀리며 살펴보기 위해 왔을 때, 모든 병사들이 무기를 준비했다. 그는 내 바로 뒤에 있는 환기구를 들여다보았다. 환기구는 대략 15~20cm 되는 작은 크기로, 1.3cm 가량 떨어진 쇠창살로 가려져 있었다. 그가 본 것은 입에서 모든 일본군을 향한, 버긴의 멋진 텍사스 스타일의 욕지거리가 쏟아지게 했다. 버긴은 쇠창살 너머로 총부리를 찔러 넣어 재빨리 2발을 쏘고 소리 질렀다. “바로 얼굴을 맞혔어.”
사격진지 안에 있던 일본군은 크게 지껄이기 시작했다. 버긴은 구멍을 통해 총을 쏘면서 이를 갈며 일본군 개자식들을 욕했다.
박격포반의 모든 병사들은 버긴이 첫 번째 발포를 하자마자 사태에 대비했다. 그것은 입구 끝의 바깥에 내 왼쪽으로 수류탄을 내던지는 형태로 왔다. 그것은 내게 축구공처럼 크게 보였다. “수류탄이다!”라고 소리 지르며 나는 사격진지 입구를 보호하고 있는 모래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모래벽은 1.2m 가량의 높이로 입구를 정면과 측면에서 오는 사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L자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수류탄이 폭발했지만, 아무도 당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여러 발의 수류탄을 더 던졌지만, 우리가 바닥에 딱 붙어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사격진지 앞에서 기면서 사격창구 가까이 쭈그리고 있었고, 때문에 안에 있는 적군은 그들에게 총을 쏠 수 없었다. 존 레디퍼와 빈센트 산토스는 위로 뛰어올랐다. 상황이 고요해졌다.
나는 문에 가장 가까이 있었고, 버긴은 내게 외쳤다. “안에 뭐가 있는지 봐, 슬레지해머.”
질문 없이 명령에 따르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에, 나는 모래벽 위로 머리를 들어 벙커의 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거의 죽을 뻔 했다. 내게서 멀어야 1.8m 된 곳에 일본군 기관총 사수가 쭈그리고 있었다. 익숙한 버섯헬멧을 쓴 그의 그을리고 무표정한 얼굴에 눈동자가 검은 점처럼 박혔다. 경기관총의 총부리가 거대한 3번째 눈처럼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먼저 반응했다. 내 카빈 소총으로 사격자세를 갖출 틈도 없이, 나는 고개를 재빨리 푹 숙였고, 내 헬멧이 거의 벗겨질 뻔했다. 아주 짧은 시간 후에 적은 6~8발 가량을 더 쏘았다. 총알은 내 머리 바로 위를 지나 벽을 찢고 고랑을 만들면서 내게 모래를 끼얹었다. 총구에서 내는 발사소리에 귀가 울렸고, 심장이 목에 얹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나는 존나 죽을 뻔 했다! 그는 그 거리에서 딱 나를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생각이 공포에 질린 내 마음 속을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내 전우들이 거의 그들의 젊은 목숨을 잃었는지, 카빈 소총을 준비하지도 않은 채 일본군이 우글거리는 사격진지를 곧장 들여다보다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어찌되었건 내가 얼마나 적을 증오했는지 말이다. 많은 베테랑 해병대원들이 내가 방금 했던 것보다 덜한 실수로도 이미 펠렐리우에서 목숨을 잃었다.
버긴은 소리 지르며 내게 괜찮은지 물었다. 쉰 꽥 소리가 내가 할 수 있는 답의 전부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제정신이 들게 해 주었다. 나는 앞쪽에서 기다가 적의 기관총이 나를 다시 쏘기 전에 벙커 위로 올라갔다.
레디퍼가 외쳤다. “벙커 안의 적들이 자동화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내푸는 동의하지 않았고, 열띤 논쟁이 뒤따랐다. 레디퍼는 분명히 자동화기가 있으며, 거의 머리가 날아갈 뻔 했던 내가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스내푸는 단호했다. 내가 전투에서 많이 경험했던 것처럼, 이런 언쟁은 비현실적이었다. 우리 상황은 이랬다-12명의 해병은 몇 명의 일본군이 안에 있는지 모르는 잘 지어진 콘크리트 사격진지에 꼬리가 잡힌 데다 주변에 우군은 없는 곤경에 처했고, 둘 다 베테랑인 스내푸와 레디퍼는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버긴이 소리쳤다. “집어치워!” 그리고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레디퍼와 나는 벙커 위, 문 바로 위쪽에 엎드렸다. 우리는 일본군이 갇혀 있는 동안에 제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간 일본군은 나와서 단검과 총검으로 우리에게 달려들 것이었고, 그건 우리에게 즐거운 생각이 아니었다. 레디퍼와 나는 입구에 수류탄을 내려놓고 터지기 전에 물러서기 충분할 정도로 문에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예외 없이 수류탄이 터지기 전에 우리에게 되던졌다. 나는 딱 그렇게 할만한, 억누를 수 없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대면한 것이 전부였지만, 내 머리를 거의 날려버릴 뻔한 기관총 사수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가 순식간에 솟아났다. 공포가 진정되면서 차가운 살인적 분노와, 되갚아주겠다는 복수심에 불타는 열망으로 변했다.
레디퍼와 나는 조심조심 문 쪽을 내려다 엿보았다. 기관총 사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총검이 꽂힌 아리사카 소총 총신 3개가 보였다. 이 총검들은 내게 3m 길이는 되어보였다. 총을 든 일본군들은 신나게 지껄이고 있었는데, 듣자하니 뛰쳐나갈 요량이었다. 레디퍼가 재빨리 행동했다. 그는 카빈 소총의 총신을 잡고 총 끝으로 소총들을 찍어 눌렀다. 일본군들은 더욱 재잘거리며 무기를 사격진지 안으로 홱 집어넣었다.
우리 뒤에서 산토스가 덮개가 없는 환기통을 발견했다고 소리쳤다. 산토스는 그 안으로 수류탄을 던져 넣기 시작했다. 각각의 수류탄은 작은 쾅 소리와 함께 우리 아래 사격진지 안에서 폭발했다. 산토스가 자신의 수류탄을 다 쓰자, 레디퍼와 나는 우리가 가진 수류탄을 그에게 건네주고서 우리는 계속해서 문을 주시했다.
산토스가 수류탄 여러 발을 떨어뜨린 후, 우리는 서서 버긴을 비롯한 다른 병사들과 더불어 사격진지 안의 적이 살아있을 가능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때 사격진지 안쪽이 추가 보호를 위해 콘크리트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수류탄 2발이 사격진지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답이 나왔다. 버긴과 함께 있던 병사들에게는 다행히도, 수류탄은 뒤쪽으로 던져졌다. 산토스와 나는 경고를 외치며 사격진지 위쪽 모래바닥에 납작 엎드렸지만, 레디퍼는 단지 팔을 얼굴 위로 올렸을 뿐이었다. 그는 팔뚝에 파편 여러 발을 맞았지만 심하게 부상당하지는 않았다.
버긴이 소리쳤다. “제길, 여기서 벗어나서 이 빌어먹을 것을 처리하게 우릴 도울 탱크를 부르자.” 그는 우리에게 사격진지에서 36.5m 가량 떨어진 크레이터들로 후퇴하라고 명령했다. 우리는 화염방사기와 75mm 포를 장착한 수륙 양용 장갑차를 부르도록 심부름꾼을 해변으로 보냈다.
우리가 크레이터에 뛰어들자, 3명의 일본군 병사들이 사격진지에서 나와 모래벽을 지나 덤불 쪽으로 달려갔다. 각각 오른손에는 총검을 장착한 소총을 들고 왼손에는 자신의 바지를 들고 있었다. 이 행동에 너무 놀란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응시하면서 내 카빈 소총을 쏘지 않았다. 포격을 받는 것처럼 두렵지는 않았지만, 단지 잔뜩 흥분했던 것이었다. 내 동료들은 나보다 노련했고 총알세례로 적들을 죽였다. 내가 효율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대신 낯선 일본군의 습관을 궁금해 했던 것에 대해 나 자신을 자책하는 동안, 동료들은 서로 기뻐했다.
수륙양용장갑차가 이때까지 덜거덕 더리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확실히 반가운 광경이었다. 장갑차가 자리를 잡는 동안, 일본군 여러 명이 꽁꽁 무리지어 사격진지에서 달려 나왔다. 몇몇은 총검을 장착한 소총을 양손에 들고 있었지만, 다른 몇몇은 한 손에는 소총을 들고 다른 손에는 그들의 바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처음의 놀라움에서 벗어나 다른 병사들·장갑차 기관총 사수와 함께 일본군을 겨냥해서 마구 쏘았다. 일본군은 맨다리·떨어진 소총·구르는 철모가 헝클어진 몰골로 뜨거운 산호 위에 폭삭 넘어졌다. 우리는 동정심 없이 그들의 최후를 크게 기뻐했다. 우리가 그들을 몰아붙였을 때 연민을 가지기에는 너무 많은 총포 세례를 받았고, 너무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
수륙양용장갑차는 우리와 나란히 일렬로 자리를 잡았다. 탱크를 지휘하는 하사는 버긴과 상의했다. 그리고 회전포탑의 포수가 3발의 75mm 철갑탄을 사격진지의 측면에 발사했다. 대포소리와 함께 포탄이 표적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할 때마다 익숙한 쿵쾅 소리가 우리 귀에 울렸다. 3번째 포탄이 사격진지에 완전히 구멍을 내버렸다. 파편들이 다른 쪽에 놓여있던 우리의 버려진 짐들과 박격포 주위에 먼지를 일으켰다. 우리와 가까운 쪽에, 직경이 1.2m 가량 되는 구멍이 났다. 버긴은 우리 장비가 손상되지 않도록 탱크 조종수에게 사격을 멈추라고 외쳤다.
누군가 일본군이 파편 때문에 죽지 않았더라도, 충격 때문에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나는 일본군 병사가 폭발로 생긴 구멍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가 우리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려고 팔을 뒤로 젖히면서 그의 굳은 투지가 보였다.
내 소총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나는 내 총의 조준선을 그의 가슴에 놓고 총을 쏘기 시작했다. 첫 탄환이 그를 맞히자,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무릎의 힘이 풀렸다. 그가 움켜쥔 손에서 수류탄이 떨어졌다. 수륙양용 장갑차의 기관총 사수를 비롯해 내 근처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그를 보고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 병사는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쓰러졌고, 수류탄은 그의 발치에서 폭발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가운데에서도, 나는 진지한 생각과 함께 카빈 소총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방금 코앞의 사람을 죽였다. 나는 내가 쏜 총알에 맞은 순간 그의 얼굴에 나타난  고통을 똑똑히 보았고,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전쟁이 굉장히 개인적인 일로 변했다. 그 사람의 얼굴 표정 때문에 나는 수치, 전쟁과 전쟁이 만들어내는 고통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찼다.
여태까지 내 전투경험은, 적군에 대한 그런 감상이 바보의 감정적인 명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를 보라. 해병대 부대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우수하며, 억센 연대들 중 하나인 해병대 5연대 일원이, 내게 수류탄을 던지기 전에 빌어먹을 적을 쏘았다는 이유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있다!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고, 동료들이 내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구멍이 뚫린 곳으로 계속 쏘라는 버긴의 명령이 내 사색을 중단시켰다. 우리는 사격진지 안으로 계속해서 총을 쏘아, 미시시피 출신의 워맥 상병이 화염방사기를 가지고 올 때까지 일본군을 꼼짝 못하게 붙들었다. 그는 용감하고 성격이 좋아서 부대에서 인기 있었지만, 내가 봤던 해병들 중 가장 사납게 생긴 인물 중 하나였다. 큰 덩치에 굵은 목소리를 가졌고, 불타는 듯한 빨간 수염은 흰색 산호 먼지로 뒤덮여있었다. 그는 내게 사나운 바이킹족을 연상시켰다. 나는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것이 기뻤다.
탱크 앞에서 몸을 구부리고서, 워맥과 조수는 우리 사선 바로 밖에 있는 사격진지로 접근했다. 그들이 목표로부터 13.7m 가량 떨어졌을 때 우리는 사격을 멈추었다. 보조원이 따라붙어서 화염방사기의 밸브를 열었다. 워맥은 75mm 포가 낸 구멍에 노즐을 겨누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쉬이이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몇몇이 비명을 낮추더니 조용해졌다.
아무리 극기심이 강한 일본군이라도 불과 질식 때문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본군에게는 우리가 항복할 수 있는 상황에 닥쳤을 때 일본군에게 항복하지 않을 만큼이나 우리에게 항복할 가능성이 없었다. 일본군과 싸우는데 있어서 항복은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감탄하는 우리들의 외침 속에, 워맥과 그의 동료는 전장 어딘가의 교착상태를 깨기 위한 호출을 기다리기 위해 대대본부로 돌아갔거나, 애쓰다가 목숨을 잃었다. 화염방사기 사수의 일은 아마 해병대 보병들에게 제일 선호 받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동굴이나 사격진지 입구에 불길을 뿌리기 위해 적의 사격이 빗발치는 가운데 31.8kg 정도 되는 인화성 네이팜이 든 탱크를 지고 바위투성이 지형을 다니는 것은, 모두가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수행했지만 거의 살아남지 못하는 임무였다.
우리는 크레이터를 떠나 조심스럽게 사격진지로 접근했다. 버긴은 일부 병사들에게 쓰러진 일본군들 가운데 생존자가 없는지 확실히 살펴보고, 나머지 병사들은 그동안 엄호하도록 명령했다. 부상당한 일본군은 접근할 때마다 예외 없이 수류탄을 터뜨렸고, 가능하면 적군을 저승길 동무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일본군 모두가 죽었다. 화염방사기와 장갑차 덕분에 사격진지는 기능을 상실했다. 7명의 적군이 그 안에서 죽었고, 밖에서 10명이 죽었다. 우리 장구와 박격포는 장갑차의 75mm포에 경미한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12명의 해병대 박격포 대원 중 우리의 유일한 부상자는 수류탄 파편에 맞은 레디퍼와 레슬리 포터였다. 그들의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우리의 행운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적군이 기습으로 우리에게 달려들었다면, 우리는 엄청난 곤경에 빠졌을 것이다.

영상에서 해당파트를 각색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영상이 표현해 낼 수 없는, 저자의 심리에 관한 서술이 굉장히 탁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감상은 각자의 독자분들에게 맡기는 바이다.

막짤은 분위기 전환을 위한 케빵이 짤 조공으로 마무리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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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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